[임순만 칼럼] 숲을 가꾸는 민족이 문명을 일으킨다
[임순만 칼럼] 숲을 가꾸는 민족이 문명을 일으킨다
  • 임순만(언론인)
  • 승인 2019.08.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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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나라는 그 부에 비례하는 숲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세계사 부흥의 주역들은 울창한 숲을 가꾸고 이용할 줄 아는 민족들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나무를 얼마나 잘 가꾸느냐는 국가의 흥망성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소였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하는 5천 년 전의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숲이 흥하면 민족이 흥했고, 숲이 쇠하면 민족이 쇠한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숲은 광활한 원시림으로 펼쳐 있어서 어느 누구도 그 넓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용사들은 60kg이 넘는 도끼를 둘러메고 숲으로 들어갔다. 용사들은 햇빛조차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의 성스런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정신을 잃었다. 그들은 이내 벌목작업에 들어갔다. 매일 나무를 베어내 호화로운 궁전과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의 하나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인류 문명의 건설이 목재의 이용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산림의 벌채는 토양 염화작용을 일으켜 곡물 수확량의 감소를 가져왔다. 길가메시가 세운 수메르 도시문명 건설은 산림의 벌채로 시작됐으나 벌채에 의해 내리막길을 달렸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곡물 생산량에 좌우됐기 때문이었다.

삼림이 훼손되면 토양은 자연의 침식작용에 내맡겨져 비옥하던 땅이 가뭄에 찌든 불모지로 바뀐다. 삼림벌채가 극성을 부리면 홍수조절이 불가능해져 관개수로가 메워져버리고, 토사침적이 심해지고, 토질에 염화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토양 염화의 심화는 식량생산의 감소로 이어지고, 식량이 부족해지면 문명의 상부구조도 존속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게 한 문명이 기울면 풍부한 숲을 지니고 있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명이 생겨난다. 인간의 역사는 숲의 개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산림 자원은 지난 40년간 1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6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를 흡수하고 연간 약 3천100만 톤의 산소를 생산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반도가 숲을 어떻게 가꾸고 있는 지를 점검해보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매우 유익한 일이다. 특히 북한 지역의 삼림의 황폐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은 한반도의 이용과 관련해 민족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길가메시의 수메르 건설이 나무를 통해 시작됐고 남벌을 통해 기울었듯, 그 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속속 들어섰던 도시국가들의 군주들도 목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왕궁과 사원의 건축은 물론 연료와 무기의 재료이자 뗏목과 짐배에 의한 필수품 조달을 위해서는 목재 확보가 필수였다. 

수메르 문명이 끝나고 근동지역의 주요 문명으로 등장한 것이 크레타 문명이다. 기원전 1900년 경, 크레타는 단지 에게해의 한 섬에 불과했지만 대규모의 원시림을 갖고 있었다. 수메르 문명이 멸망한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상인들은 무기제조, 건축, 연료의 핵심이 되는 목재를 구하러 크레타를 찾아왔다. 그 결과 엄청난 부가 크레타에 유입됐고, 크레타는 헬레니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로 변모했다. 그러나 크레타 문명의 쇠락 역시 화산폭발이 아니라 숲의 상실과 그에 따른 토질의 저하가 주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 내용은 원생(原生)지대 탐험가 존 펄린의 역작 <숲의 서사시 A Forest Journey>에 자세히 나와 있다.

펄린은 기원전 500년 경 마케도니아가 헬레니즘 세계의 강국으로 부흥한 원인도 나무와의 연관성에서 찾고 있다. 당시 엄청난 목재를 필요로 하는 은 제련에 힘을 쏟기 시작한 그리스와 주변 강국들은 마케도니아의 삼림에 눈길을 돌렸다. 풍부한 숲을 가지고 있던 헬레니즘의 변방 마케도니아는 지중해의 패권을 노리는 그리스와 주변국들로부터 유입되는 부를 정치와 군사력 증강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할 수 있었다. 

기원 전 300년 경 초기 로마 국부의 원천도 원시림에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정벌을 위한 대규모 함대구축을 갈망하던 아테네인들은 당시 최고로 꼽던 전함 건조용 전나무가 울창한 로마의 삼림자원을 주목했다. 아테네인들의 시칠리아 원정이 패배로 끝나자 풍부한 산림자원을 지니고 있던 로마로 힘의 축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치스런 건축과 난방, 목욕문화와 고급 목가구의 유행 등 대규모의 목재 소비를 부추기는 로마 시민들의 호화생활은 점차 나무 부족현상을 야기했고 바로 거기서 로마제국의 쇠퇴는 시작됐다.   

로마 이후 이슬람이 지중해를 지배한 바탕에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튀니지의 함대 조선소가 있었다. 이들 두 조선소는 인근에 뛰어난 삼림지대가 있었기 때문에 지중해 연안국 중에서 가장 뛰어난 함대를 만들 수 있었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이후 해상력으로 흥성했던 베네치아가 제4차 십자군 원정 당시 유럽 최대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라틴제국을 세우게 된 배경에도 베네치아의 광할한 숲을 들고 있다.   

영국이 17세기부터 집중적으로 북아메리카를 개척하기 시작했던 근본적인 이유도 신세계의 엄청난 처녀림 때문이었다고 한다. 목재가 고갈돼 가던 영국은 당시 해안에서 중심부로 갈수록 짙고 넓어지는, 거의 나라 전체를 덮고 있는 북아메리카의 삼림 확보에 명운을 걸어야 할 형편이었다. 

신생 미국의 반세기에 걸친 눈부신 경제발전은 철강을 제련하는 데 필요한 숯, 해운과 제조업, 건설업의 바탕이 되는 풍요로운 목재의 보고에 있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그러나 미국도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광활한 삼림 중의 하나였던 동부 지역 삼림의 대부분을 잃고 있다. 미국의 건축학자 콜럼 코츠는 미국산 삼나무의 수명이 약 2000년에 이르기 때문에 그만큼 오래 투자해야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100년이 안 돼 베어져나간다고 조사한 바 있다. 숲은 그만큼 장기간 투자해야 할 대상이지만 너무 쉽게 남벌됨으로써 가치를 쉽게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긴 안목에서 숲을 가꾸는 일에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더라도 민족의 미래를 향한 길은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이렇듯 삼림은 인류 역사에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자원의 보고다. 잘 사는 나라는 그 부에 비례하는 숲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수메르문명 → 크레타문명 → 마케도니아 → 로마 → 이슬람 → 라틴 → 영국 → 미국으로 이어지는 세계사 부흥의 주역들은 울창한 숲을 가꾸고 이용할 줄 아는 민족들이었다. 숲은 자원뿐 아니라 생태학 측면까지 덧붙이면 그 효용가치는 무한이다.

숲이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모든 생명체들의 근원인 물의 순환과정에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는 삼림경제학자 빅터 샤우버거(1885~1958)의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 산림관리원이었던 그는 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하여 물과 숲의 에너지 순환과정에 대한 심층적인 이론들을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직선으로 물길을 낸 인공적인 강보다 꼬불꼬불한 자연적인 강의 유속이 더 빠르고 물의 에너지가 살아있음을 라인강의 실험에서 입증시킨 사례는 유명하다.

그의 많은 이론 중에서 여기에 소개하고 싶은 것이 물과 숲의 완전순환과 불완전순환에 대한 분석이다. 숲이 풍부한 지역은 에너지가 풍부한 강우→지하침투→지하수면의 비중 유지 및 조절→자양분이 풍부한 물의 지표면 상승→배출 및 증발→강우의 완전순환을 되풀이 한다. 이런 완전순환 사이클이 무너지면 홍수가 되풀이 되거나 사막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샤우버거는 지구 차원에서의 대대적인 식목운동만이 오늘날의 기후변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이라고 결론짓는다.

한국의 산림 자원은 지난 40년간 1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6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를 흡수하고 연간 약 3천100만 톤의 산소를 생산한다. 우리나라 산림면적은 633만5000㏊로, 국토의 63.2%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 면적 대비 산림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핀란드(73.1%), 일본(68.5%), 스웨덴(68.4%)에 이어 4위를 차지할 만큼 산림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남과 북 중 어느 한쪽의 산림이 황폐화되면 한반도 전체에 끼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북한의 산림재앙은 한반도 사막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나무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산림훼손이 심해졌다. 전문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은 국토면적의 73%가 산림이며, 이 가운데 32%가 황폐화 됐다고 진단한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백두산과 칠보산, 금강산을 비롯해 백두대간, DMZ등은 잘 보전되어 있지만 그 외 대부분 지역은 민둥산이라는 이야기다. 남한 수도권 미세먼지의 15~20%, 오염물질의 42%가 북에서 유입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남북 민간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북한 나무심기 사업이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 긴 안목에서 숲을 가꾸는 일에 남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더라도 민족의 미래를 향한 길은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남과 북은 2018년 7월 4일 남북산림협력 분과회담을 갖고 양묘장 현대화, 산림병해충 방제 상호 협력 등의 문제에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큰 진척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숲이 쇠하면 민족도 쇠한다는 것을 인류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결론은 너무 분명하다. 남과 북 가릴 것 없이 삼림을 가꿔야 하고 울창한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인 / 전 국민일보 편집인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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