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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0년대 항해 도중 괴혈병 증상을 보이는 선원들을 중남미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 내려놓았다. 그 후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귀국길에 콜럼버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섬에 다시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죽은 줄 알았던 선원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 때 이처럼 선원들의 직업병처럼 여겨졌던 괴혈병의 치료제, 즉 비타민 C가 발견된 건 그로부터 약 430여 년이 흐른 후였다. 1920년대 말 헝가리의 생화학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Albert Szent-Gyorgyi)는 부신체계의 파괴가 애디슨병을 일으키는 기전을 연구하던 중 이상한 물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애디슨병 환자는 피부 색소가 갈색으로 침착되는 증상을 보였는데, 그 물질은 이 같은 갈변 현상을 막아주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던 것. 오렌지 및 양배추 등의 식물 즙과 동물의 부신으로부터 분리해낸 그 화합물에는 헥수론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31년 헝가리 세게드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센트죄르지는 지역 특산품인 파프리카에서도 헥수론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헥수론산이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실험에 착수했다. 기니피그들에게 매일 1㎎의 헥수론산을 투여한 결과, 실제로 기니피그들은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다.

헥수론산이 괴혈병 치료제임을 알아낸 그는 영국 버밍햄대학의 화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월터 노먼 호어스(Walter Norman Haworth)를 찾아갔다. 탄수화물 구조를 연구하던 호어스는 센트죄르지가 샘플로 갖고 온 헥수론산이 당에서 추출한 산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타민 C의 화학식은 C6H8O6이다. 즉, 한 분자의 비타민 C는 탄소원자 6개, 수소원자 8개, 산소원자 6개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분재 내의 모든 원자들이 같은 평면 위에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헥수론산의 정확한 구조를 밝히기 위해선 그 원자들이 3차원으로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호어스 연구팀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던 중 당시 신흥 분야였던 X-선 결정학을 통해 수수께끼를 해결했다. 센트죄르지는 처음으로 비타민 C의 분리 및 대량 추출에 성공했으며, 호어스는 비타민 C의 구조를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호어스는 자신이 구조를 밝혀낸 헥수론산의 이름을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으로 바꿨다. 라틴어 ‘scorbia(괴혈병)’에 ‘anti’의 의미를 지닌 ‘a’를 붙여 ‘항괴혈병을 위한 산’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아스코르브산은 비타민 C의 화학명이다.

비타민 C의 구조를 밝혀낸 호어스는 1933년에 탄수화물로부터 비타민 C를 화학적으로 합성해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런데 정작 비타민 C를 대량생산해 대중화시킨 것은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전신인 스위스의 호프만라로슈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가 사용한 방법은 폴란드 출신의 스위스 화학자 타도이츠 라이히슈타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비타민 C의 화학 합성법이었다. 그는 박테리아를 이용한 발효법으로 포도당 100g에서 비타민 C 40g을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으며, 호프만라로슈는 그의 제조법 특허를 사들인 것이다.

당시 이 회사에서 개발한 비타민 C의 상품명은 ‘레덕손’이었는데, 거품을 내면서 물에 녹는 알약이었다. 호프란라로슈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대량 생산 및 마케팅을 실시했고, 이 사업이 크게 성공하면서 회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보통 과학 연구에 기반을 둔 사업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레덕손의 경우 발견에서 대중화까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희귀한 성공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레덕손 상표는 2004년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에 인수돼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

1937년 노벨상 시상식에는 비타민 C의 개발자들이 동시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비타민 C를 최초로 분리해낸 얼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세포 호흡의 연구를 계속해 비타민 C와 푸마르산의 촉매 작용에 관한 발견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또한 비타민 C의 구조를 알아내고 합성에 성공한 월터 노먼 호어스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비타민 C의 대량 생산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라이히슈타인 역시 1950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의 수상 이유는 비타민과 전혀 상관없는 부신 피질 호르몬에 관한 연구 덕분이었다.

탄소와 수소, 산소를 천연 비타민의 화학식처럼 결합시킨 아스코르브산은 물과 만나 강한 산성을 띠므로 빈속에 먹으면 위에서 염증을 일으킨다. 또한 과도한 비타민 C 섭취는 수산염의 농도를 증가시켜 신장 결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2016년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매일 1000㎎ 이상의 비타민 C를 먹은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신장 결석에 걸림 위험이 1.19배 높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비타민 C 보충제를 과다 복용할 경우 결석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타민 C를 최초로 발견한 얼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이 같은 비타민 C의 부작용에 대해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비타민의 최소 또는 적정 섭취량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후 그의 생각대로 많은 의사들은 최소‧적정 섭취량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그는 괴혈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아스코르브산만으로는 전혀 효과가 없으며 그 안에 포함된 비타민 C 성분의 완전한 모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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