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구촌동포연대 최상구 사무국장
[인터뷰] 지구촌동포연대 최상구 사무국장
  • 최다은 기자
  • 승인 2019.10.07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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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 삶의 궤적은 역사와 인권의 문제"
2016년 사할린주 한인협회 사무실에서 달력은 전달하고 있다. (사진=지구촌동포연대)
2016년 사할린주 한인협회 사무실에서 달력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지구촌동포연대)

[뉴스로드] “추운 러시아에 우리 동포는 왜 갔을까요?”. 한 한생이 ‘숙제를 해야하는데 재외동포에 대해 잘 모르겠다’며 포털사이트에 질문을 올렸다. 교과서에 한 줄, 길어야 두세 줄로 그저 ‘강제 이주를 당했다’는 정도로만 서술되며 외면받은 역사가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역사, 바로 ‘재외동포 강제이주사’이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재외 동포.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전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KIN(지구촌동포연대)’다. ‘지구촌동포연대’는 99년에 창립되어 어언 20주년을 맞이했다. <뉴스로드>는 1일 ‘지구촌동포연대’ 사무실을 방문해 최상구 사무국장을 만났다. 최상구 국장이 전하는 교과서 너머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먼저 ‘지구촌동포연대’가 어떤 단체인지 간단한 소개해달라. 

‘지구촌동포연대’는 재외동포의 문제를 역사와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남북 재외동포 사회간에 상호교류와 협력을 이루고, 이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선적으로 재외동포의 역사와 인권 현실을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다. 현재 주된 사업으로는 사할린 동포 달력 전달 사업과 우토로 평화기념관 설립 사업이 있다.


사할린동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계기는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단체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4년부터 재외동포NGO 대회를 개최하면서부터다. 당시 사할린 주 한인이산가족회 이수진 회장님이 사할린 한인 문제를 발표해주시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2006년부터 사할린을 방문해, 이후 일년에 최소 한 번, 혹은 두세 번, 많이는 2달간 머무르기도 했다. 동포들의 실태와 의견을 듣기 시작한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개인적인 계기로는 2011년 자원활동으로 발 들이면서이다. 사할린에 있는 묘지를 조사해 국내에 아직 행방을 찾지 못하는 이들의 유족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이었다. 그 두 달치 사업 보고서를 만들었던게 계기로 지금 사무국장까지 하게 됐다. 이후 동포들 인터뷰도 10차례 다니고 사할린에 방문하면서 관심은 더 깊어졌다.

(왼쪽)2014년 사할린 동포에게 선물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오른쪽 상단) 달력을 받은 프라브다 마을 고이쾌임, 신혜분, 최군자, 김록력씨, (오른쪽 하단) 2019년 달력을 전한 우글레고르스크. (사진=지구촌동포연대)
(왼쪽)2014년 사할린 동포에게 선물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달력', (오른쪽 상단) 달력을 받은 프라브다 마을 고이쾌임, 신혜분, 최군자, 김록력씨, (오른쪽 하단) 2019년 달력을 전한 우글레고르스크. (사진=지구촌동포연대)

 

달력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할린에 항상 방문할 때마다 한국 달력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어보니, “한국 풍경이 보고 싶고 음력과 절기도 알아야 한다”라며 걸어놓으셨다고 했다. 타지에 있어도 동포분들은 음력에 맞춰 농사일과 생일, 제사를 지내고 손 없는 날도 지키시다보니 달력은 필수였다. 특히 사할린은 섬이라 밀물, 썰물, 물 때 알아야 하니 음력이 중요했다. 달력이 필요하시다는 걸 알고, 처음에는 은행에서 남은 것들을 모아 비행기에 수하물을 초과하면서까지 들고 갔다. 그러다가 새고려신문(동포신문)의 음력 표기 달력 몇 년 치를 계속 모아서 겹쳐 걸어놓으신 모습을 봤다. 이때 “달력이 이곳에서 정말 귀하구나!”라고 느꼈고 이후 “기왕 가져가는 것 선물처럼 만들어 가져가자”라고 생각해서 달력을 만들게 됐다.

 

사할린 달력의 제작 과정을 말해달라. 

김지연 사진작가님 소개로 만난 ‘한국의 재발견’의 임재천 작가님을 시작으로 매년 사진작가 분들이 달력사진을 재능 기부해주셨다. 2014년 달력을 시작으로 총 6번 만들게 됐다. 재능 기부였지만 사진 하나하나를 공들여 주셨다. 2013년, 첫 번째 달력은 온라인 모금이 예산에 크게 못 미쳤다. 제작비용이 부족했는데, 감사하게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셨고, 고베와 오사카에 계시는 일본인과 재외동포분들까지 동참하면서 무사히 제작을 진행할 수 있었다. 모두의 관심과 지원으로 제작된 달력이다. 

 

달력을 전달하니 사할린 동포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

달력 속 꼼꼼히 기재한 음력과 한국의 모습이 담긴 다채로운 사진을 보시며 기뻐하시고 소중히 여겨주셨다. 첫 번째로 전달한 달력부터 꾸준히 모아 놓으시는 동포 분도 계셨다. 재밌는 건 달력을 들고 갈 때마다 다음 달력을 위한 피드백을 해주셨다. “손 없는날도 기재해달라, 크기도 좀 키워달라” 등등. 동포분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만드니 달력들도 점점 발전했다. 

 

우토로 (사진=지구촌동포연대)
우토로마을에 한일 양국정부가 나서 새로 건설한 아파트. (사진=지구촌동포연대)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 사업’을 소개해달라.

우토로 현지에 평화기념관을 만드는 사업이다. 설명을 하자면 우토로 마을은 군비행장건설을 위해 조선인들이 동원되면서 마련된 숙소였다. 그러다 패전되니 밀린 임금도 못 받고 고향에 돌아갈 돈도 없던 분들이 정착하게 됐고 이후 조선인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일본에서는 상하수도 시설도 설치해주지 않는 등 빈 땅으로 여겼지만 오랜 기간 조선인만 살던 마을이다. 그러다 땅을 소유하고 있던 닛산 자동차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아버렸다. 주민들은 부동산업자의 소유권 주장에 우토로에서 내쫓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 일본의 시민들과 동포들, 그리고 한국정부의 지원으로 강제퇴거 위기를 벗어나 우토로에 계속 살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우토로 마을의 역사와 한일동포연대의 역사를 보존하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 ‘우토로 평화기념관 건립사업’이다. 

 

우토로 마을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고,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해결을 위해 ‘그냥 땅을 사자!’라고 결정했다. 모금을 진행하니 총 13억원 정도가 모였다. 그리고 2007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한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국회에서도 30억 지원을 예산에 반영했다. 한국의 모금액과 지원금으로 땅을 사고, 그 땅에 세울 주민 아파트는 일본 정부가 지원했다. JTBC는 아베가 역사의 흔적을 지우려고 지금 집들을 철거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맞지 않다. 비록 일본의 사업이름은 ‘불량주택개선사업’이지만 한일 양국 정부가 함께 나섰다는 의미에서 우호의 상징이기도 하고, 정부가 특정 동포집단을 위해 30억이나 지원해준 것도 의미가 있다. 현재 아파트 1개는 건설돼 40세대가 입주해 살기 시작했다. 이제는 두 번째 아파트와 공원과 기념관 건설을 위한 부지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많은 재외동포들을 만나오셨는데 주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아쉬운 마음이 있다. 그때 해결했다면 지금과 같지 않았을 텐데.. 해결되지 못한 역사가 길어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동포들이 모두 귀국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종종 생각해본다. 못했기에 귀국 문제, 국적 문제가 생겼다. 동포들은 국적을 선택할 자유도 없이 살기 위해 타국의 국적을 받았다. 특히 사할린 동포의 경우 한 가족이지만 각자의 국적은 다른 사연, 5번이나 국적이 바뀐 사연 등 여러 일들이 생겼다. 귀환했다면 이런 문제 없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는다.  

 

재외동포 문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얼마 전 대학교에 강의를 나갔다. 학생들 누구도 사할린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질의시간에 질문하는 학생도 적었다. 재외동포역사가 학생들에게 그저 먼 이야기로 느껴지는 현실에 안타까웠다. 교과서에도 그저 몇 줄로만 서술될 뿐 우리 동포의 이주사를 아무도 말하지 않는 현실이다. 또한 동포의 3세들도 거주지역의 역사를 배울 뿐 이주역사 교육은 받지 못한다. 국내에서 동포이주사가 체계적이지 않으니 해외동포 교육도 허술하다. 한국에 초청되어 오는 동포청소년들에게 모국의 역사를 알아야한다며 이순신, 세종대왕 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왜 거기서 태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재외동포사는 한국이든, 동포사회이든 모두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빨리 개선돼서 적어도 자기들이 어디서 왔는지부터 접근하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사할린 동포 조영제 어르신 내외가 직접 차려주신 점심상 (사진=지구촌동포연대)
사할린 동포 조영제 어르신 내외가 직접 차려주신 점심상 (사진=지구촌동포연대)

오랜 기간 재외동포 문제에 천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동포분들께 정기적으로 가니 알아보시는 분도 있고, 재워주고 식사도 해주시는 분도 계신다. 식사해주실 때마다 든든히 먹여주시려 해서 두 그릇은 먹어야 더 먹으라는 소리를 안하신다. 그럴 때마다 “올해도 밥값을 해야겠구나!”라고 느낀다. 또한 함께 일하는 이들과 느끼는 동포문제에 대한 공감, 연대의식이 이 과정을 이겨내게 해준다. 

 

‘지구촌동포연대’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당면한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다 보니 한편으로는 우리 단체의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이 길어졌다. 하지만 항상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동포 간 네트워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를 잊지 않고 ‘역사와 인권의 관점으로 일관되고 평등하게’ 재외동포와 함께하는 그런 꿈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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