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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곰들은 먹이가 적은 겨울에 동면한다. 하지만 북극곰의 경우엔 좀 특이하다.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바다표범 종류인데,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어야 고위도의 북극으로 접근해 사냥을 할 수 있다. 때문에 북극곰에겐 겨울이 육식성 먹이활동을 할 가장 좋은 시기다.

겨울철 사냥을 하기 부적합한 지역에 사는 북극곰들은 활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끔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북극곰들은 겨울에 몸집을 불린 후 여름이 되면 활동을 최소화한다. 말하자면 ‘여름잠’을 자는 셈이다.

이처럼 흥미로운 북극곰의 겨울잠에 관한 책을 병실에서 탐독한 과학자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로 머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이스라엘의 아다 요나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겨울잠을 자는 북극곰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호기심이 일었다. 잠에서 깨어난 북극곰이 사냥을 하기 위해선 많은 단백질을 합성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단백질 생산 공장인 리보솜이 매우 정교한 형태로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요나트는 그 정교한 리보솜의 형태가 바로 ‘결정’ 상태로 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추론했다. 결정 상태에서 높은 밀도로 배열돼 있으면 리보솜의 기능 및 구조가 온전한 상태로 수개월간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그녀는 새로운 연구 계획을 세운 후 1970년대 말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바로 리보솜의 정밀한 입체 구조를 분자 수준에서 밝혀내기 위한 연구였다.

1955년에 처음 발견된 리보솜은 유전 정보로써 단백질을 합성한다. 그런데 리보솜은 대략적인 기능은 밝혀졌지만 상세한 기능은 알려진 것이 없었다. 리보솜의 구체적인 입체구조를 밝혀내지 못해서였다.

지름이 20nm(나노미터)에 불과한 리보솜은 10만 개 이상의 원자로 이뤄져 있어 정밀한 구조를 밝혀내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그런데 리보솜을 결정 상태로 만들면 X-선을 쏘아 원자 배열구조를 파악할 수도 있다.

요나트는 높은 온도에서도 살아남는 ‘바실러스 스테아로테르모필루스’란 박테리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다른 박테리아에 비해 리보솜이 적을 뿐더러 좀 더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녀는 1980년에 리보솜의 결정을 만드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하지만 X선으로 리보솜의 결정을 측정하기 위해선 좀 더 나은 상태의 것이 필요했다. 1990년대 초 그녀는 결국 사해에 사는 극한미생물을 이용해 더욱 안정된 리보솜 결정을 만들어냈다.

요나트의 연구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과학자들도 리보솜의 구조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00년에 드디어 리보솜의 원자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결정 구조에 관한 연구 결과들이 잇달아 발표됐다. 이를 바탕으로 리보솜의 3차원 구조가 원자 수준의 정밀도로 밝혀졌다.

이로써 인류는 리보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덕분에 항생제들이 병원균의 리보솜을 어떻게 공격해 기능을 하는지 파악하게 되었고, 신약을 편리하게 개발할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됐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요나트는 미국의 토머스 스타이츠, 영국의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과 공동으로 200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리보솜에 관한 요나트의 선구적인 업적을 바탕으로 스타이츠와 라마크리슈난도 각각 독자적인 방법으로 리보솜의 구조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요나트는 중동 국가 최초이자 역대 네 번째 여성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다. 겨울잠을 자는 북극곰에 대한 호기심이 결국 노벨상으로까지 연결된 셈이다. 그녀에게 호기심이란 어린 시절부터 늘 따라다니던 친구 같은 존재였다.

요나트는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인 1939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랍비의 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호기심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5살 때 집의 높이를 재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가 팔이 부러지는가 하면, 7살 때는 발코니에서 등유로 실험을 하다 불을 낸 적도 있다.

예루살렘 헤브루대학에서 화학 학사 및 생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1968년 바이츠만연구소에서 X-선 결정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친 후 막스플랑크연구소와 바이츠만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그녀가 20여 년이란 긴 시간 동안 리보솜 결정이라는 한 가지 연구주제에 매달릴 수 있었던 건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에 드는 이스라엘의 바이츠만연구소의 독특한 지원책 덕분이다.

화학자이자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인 하임 바이츠만에 의해 1934년 설립된 이 연구소에서는 총 2600여 명의 교수, 연구원, 대학원생들이 수학, 컴퓨터, 물리, 생물학, 화학 등의 기초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바이츠만연구소의 경쟁력은 연구원들에게 7년간 별도의 심사 없이 장기간 연구를 지원하는 데 있다. 또한 재정의 20% 이상을 기부금으로 충당하는 것도 이 연구소의 특징이다. 요나트가 20년 이상 한 분야의 연구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기부 문화와 장기간의 지원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리보솜과 관련해 약 180편의 논문을 발표한 요나트는 노벨상 외에도 유럽결정학상, 이스라엘 화학상, 볼프 화학상, 로레알-유네스코 세계여자과학상 등을 받았다.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의 최근 연구과제는 슈퍼박테리아를 물리칠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과학적 발견의 기쁨이 더 크다는 호기심 박사 할머니의 마지막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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