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 맞은 한국당 필리버스터, 비판 잇따라
역풍 맞은 한국당 필리버스터, 비판 잇따라
  • 장소라 기자
  • 승인 2019.12.02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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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등 의원들이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과 국회의장 민생외면 국회파탄 규탄대회'를 열고 '필리버스터 보장, 민생법안 처리, 국회 본회의 개의'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등 의원들이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과 국회의장 민생외면 국회파탄 규탄대회'를 열고 '필리버스터 보장, 민생법안 처리, 국회 본회의 개의'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면피정치가 아닌 책임정치를 하십시오”

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꺼내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카드에 대해 ‘무리수’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당 내부에서도 민생 법안을 볼모로 잡으면서까지 필리버스터를 강행해 여론 악화를 초래한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모양새다.

◇ 홍준표, “임시국회 활용하면 필리버스터 무의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카드가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한 종국적인 대책이 아닌 ‘면피용’ 수단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홍 전 대표는 “민주당이 예산안과 민생법안을 12월3일 먼저 상정해서 처리하고 마지막 안건으로 패스트트랙 안건을 상정해서 필리버스트로 저지하면 정기국회 종료 후 바로 임시회를 소집 할 것”이라며 “그 다음 소집되는 임시회에서는 필리버스트 없이 바로 표결 절차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한국당은 지난 29일 유치원 3법을 포함해 총 199건의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번 정기국회 폐회 시점인 10일까지 선거법 개정안 및 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안건의 국회 상정을 막기 위해 시간을 벌겠다는 것. 홍 전 대표의 설명은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임시국회에서 패스트트랙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경우, 필리버스터는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자료=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
자료=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

◇ 나경원, 민식이법 교환 제의에 학부모 비판 거세

필리버스터를 앞두고 명분을 선점하기 위한 여론전에서도 악수가 나왔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사망 사고 발생 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민식이법’과 여론의 지지가 높은 유치원 3법 등 민생법안이 지연된 것이 악재로 작용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자유한국당은 민식이법, 해인이법, 각종 민생법안, '우선 처리'하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실제 민식이법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를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며 “그 요구를 차갑게 외면한 쪽이 바로 여당”이라고 반박했다. 12월1일 기자회견에서도 나 원내대표는 민식이법은 애초에 필리버스터 대상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가 전날 기자회견에서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필리버스터 신청 법안에 앞서 민식이법 등을 상정해 통과시켜줄 것을 제안한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선거법과 민식이법을 교환하자는 한국당의 제안에 민식이법 통과를 촉구하던 부모들이 분노를 터뜨린 것.

고 김민식 군의 어머니 박초희씨는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선언한 지난달 29일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나경원 말 바꾸지 말라, 너도 엄마라고 속상하다고 내 앞에서 얘기했다”며 “우리가 다 있는 걸 알면서 한 아이 한 아이 호명하면서 협상카드를 내밀어?”라고 나 원내대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박씨의 발언은 나 원내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통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선거법과 민식이법을 맞바꾸는 ‘조건부’ 필리버스터를 제안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박씨는 네티즌의 악플이 이어지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한 상태다. 

국민 여론 또한 부정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달 29~30일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된 공수처 설치법과 선거법 개정안은 찬성 의견이 각각 71.0%, 48.1%로 반대 의견(25.4%, 43.6%)보다 높았다. 필리버스터 신청 대상에 포함된 유치원 3법에 대한 지지 여론도 69.2%로 반대 여론(17.8%)의 세 배를 초과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를 연다고 해도 유치원 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방침은 유지할 뜻을 밝혔다. 

자료=한국사회여론연구소
자료=한국사회여론연구소

◇ 시민단체 "민생 법안부터 즉각 처리해야"

무엇보다 필리버스터 신청 대상에 한국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 다수 포함된 것도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필리버스터 대상인 199건의 법안 중 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은 약 50건. 전체 안건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중에는 민생현안과 직접 연결된 법안이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김정재 의원이 발의한 ‘포항 지진 특별법’은 지진 발생 원인에 대한 진상 조사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치료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신보라 의원이 발의한 ‘청년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에 대한 책무를 정하고 청년정책의 수립·조정 및 청년지원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한 법안이다. 

만약 필리버스터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김 의원과 신 의원은 자신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에 임해야 한다. 신 의원은 지난 6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두지 말아야 할 악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시민단체들도 필리버스터의 모순을 지적하고 나섰다. 전국 57개 청년단체로 구성된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청년단체 연석회의’는 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의 삶은 당리당략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자유한국당의 명분 없는 반대는 청년기본법 뿐만아니라 유치원 3법, 민식이법 등에 담긴 시민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홍 전 대표는 필리버스터 정국에 대해 “여야 모두 진퇴양난에 빠졌지만, 민주당이 더 많은 선택의 카드를 쥔 셈”이라고 진단했다. 한국당 지도부가 선택한 초강경대책이 오히려 여론을 등돌리게 만드는 악수로 작용했다는 것.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전략을 강행할 지, 아니면 홍 전 대표의 조언대로 전략을 수정해 “책임정치”로 돌아설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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