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사망한 개그맨 박지선씨와 관련된 기사의 핵심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2일 사망한 개그맨 박지선씨와 관련된 기사의 핵심 연관키워드. 자료=빅카인즈

개그맨 박지선씨가 2일 자택에서 모친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많은 이들이 생전 웃음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퍼뜨려온 고인을 추모하고 있지만, 갑작스런 비보를 전해는 언론의 보도행태는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뉴스로드>가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고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2일부터 현재까지 관련 뉴스를 검색한 결과, 일간지 및 경제매체, 지역매체 등 54개 언론매체에서는 약 300건 이상의 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고인에 대한 기사와 연관된 핵심 키워드에는 빈소가 위치한 이대목동병원과 고인이 과거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 및 고인과 절친했던 개그맨 동료들과 추모의 글을 남긴 유명인들의 이름들이 포함됐다. 

분석 결과, 고인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마련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준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지침은 ▲기사 제목에 자살 및 이를 의미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구체적인 자살 방법·도구·장소를 보도하지 않을 것 ▲자살 관련 사진·동영상은 유의해서 사용할 것 ▲자살을 미화·합리화하지 않고,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 및 예방정보를 제공할 것 ▲고인과 유가족의 인격과 사생활을 존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실제 주요 매체들은 대부분 제목에서 ‘자살’이라는 표현 대신 ‘숨지다’, ‘사망’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기사 내용 또한 사망과 관련해 간략하게 사실관계를 전하고 고인의 생애를 조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됐으며, 거의 모든 매체가 기사 말미에 상담소 연락처 등 자살예방 관련 정보를 추가했다.

 

미국 자살예방기관 '세이브(SAVE)'의 자살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 자살 동기를 추측하지 말고 유서의 내용도 공개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 자살예방기관 '세이브(SAVE)'의 자살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 자살 동기를 추측하지 말고 유서의 내용도 공개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만 국내 가이드라인과는 달리 '자살' 등의 표현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자료=세이브 홈페이지

◇ 다수 언론사 '자살보도 권고기준 3.0' 이행 안해

하지만 여전히 일부 매체 에서는 기사 제목에 자살과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내용을 보도하는 등 권고기준에 어긋난 보도행태를 보였다. 

특히, 빅카인즈를 통해 분석한 결과, 고인 관련 뉴스의 연관 키워드 중에는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살’을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해 국내 매체들이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사실상 ‘자살’과 의미가 동일해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는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주요 일간지 중에서는 서울신문과 세계일보, 경제매체 중 아주경제와 매일경제, 한국경제, 헤럴드 경제 등이 고인의 비보를 “극단적 선택”, 또는 “극단적 선택 추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전했다. 

물론 ‘자살’이나 ‘극단적 선택’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 실제 해외 자살보도 관련 가이드라인에는 '자살' 등의 표현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 

다만 대부분의 외신에서는 자살 소식을 전할 때 ‘자살(suicide)’보다는 ‘사망(dead, death)’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의 경우 지난 6월 헐리우드의 영화제작자 스티브 빙의 자살소식을 전하며 “헐리우드 제작자이자 자본가인 스티브 빙이 55세의 나이로 숨졌다(Steve Bing, Hollywood Producer and Financier, Is Dead at 55)”고 보도했다. 

CNN의 경우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소식을 전하며 “서울 시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Seoul's Mayor found dead)”라는 단순한 제목을 사용했다. 로이터통신 등 대부분의 외신도 유사한 제목을 사용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2일 유튜브에서 박지선씨의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내용의 방송을 진행해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는 2일 유튜브에서 박지선씨의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내용의 방송을 진행해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유튜브

◇ 일부 언론, 박지선 모친 메모 공개, 사생활 침해 논란

더 큰 문제는 자살의 동기나 유서 내용 등을 전하는 등 고인과 유족에 대한 존중을 상실한 보도행태가 여전히 이어졌다는 점이다. 앞서 경찰은 2일 고인이 숨진 자택에서 모친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1쪽 분량의 유서성 메모를 발견했으나 유족의 뜻에 따라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3일 오전 1시 조선일보는 해당 메모의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기사 제목에서는 ‘메모’가 아닌 ‘유서’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메모의 내용 또한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해당 기사는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기사로 등록돼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의 미화를 방지하려면 유서와 관련된 사항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유서에 대한 보도가 자칫 자살 동기에 대한 부정확한 추측을 초래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독자들에게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자살 예방 기관 ‘세이브(SAVE)’도 “유서가 발견돼 조사 중이라는 사실은 보도하되 그 내용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다. 세이브의 자살 보도 가이드라인에는 “자살의 동기를 추측하거나 지나치게 단순화해 보도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한 이후 메모의 내용을 전하며 자살 동기를 추측하는 기사가 서울신문과 한국경제, 매일경제 등의 매체에서 연이어 보도됐다. 메모를 내용을 처음 전한 기사의 댓글란에는 언론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한 독자는 “유족이 비공개를 원했는데 굳이 보도를 했어야 하나”라며 “유족들은 슬픔에 빠져있는데 언론은 단독 경쟁이나 하고 있다”고 분노를 토로했다. 또 다른 독자는 “이 기사를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한 기사들이 줄줄이 올라올 것”이라며 “공개해야 할 범죄자 신상은 비공개하면서 원치 않는 개인사는 다 공개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살 동기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로세로연구소’는 2일 고인의 이름을 제목을 걸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빈축을 샀다. 특히 가로세로연구소는 제목에만 고인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 1시간가량 이어진 라이브 방송의 대부분을 현 정권을 비판하는데 할애해 많은 누리꾼들의 지탄을 받았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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