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는 지난 1월 38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성평등지수(GEI) 2021'을 발표했다. 자료=블룸버그
블룸버그는 지난 1월 38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성평등지수(GEI) 2021'을 발표했다. 사진은 개별 평가항목의 평균 점수. 자료=블룸버그

동아제약의 ‘성차별 면접’ 사태로 성차별적 채용 관행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법과 제도를 정비해 ‘간접차별’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시장도 기업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공공의 영역에서는 법과 제도를 통해 직접적으로 성차별적 관행을 제재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지만 민간 영역에서 규제만으로 이러한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남녀고용평등법에 간접차별을 규제하는 조항이 포함돼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의 채용과 직무배치, 승진과 임금에 있어 성별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성차별적 조직문화를 가진 기업이 일시적인 보이콧이나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넘어서 실질적인 재무적 손실을 입도록 하는 방식이 조명을 받고 있다. 바로 ‘젠더 관점 투자’를 통해 성차별적 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 경로를 봉쇄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 블룸버그, 매년 ‘성평등 지수(GEI)’ 발표

‘성평등’은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의 여러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투자 대상이 되는 기업이 얼마나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젠더 관점’은 부수적인 기준으로 취급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업의 성평등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투자 결정에 반영하려는 노력이 시장에 확산되는 분위기다. 실제 블룸버그의 경우 매년 ‘성평등 지수(Gender Equality Index, GEI)’를 발표해 투자자들에게 참고자료로 제공하고 있다. 

GEI는 시가총액 10억 달러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공시 및 설문조사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통해 ①여성 리더십 ②성별 임금 격차 ③포용적 기업문화 ④성폭력 대응 정책 ⑤여성 친화적 브랜드 등 5개 부문을 평가한다. 세부적으로는 ▲여성 임원 및 중간관리자 비율 ▲여성 승진율 및 퇴사율 ▲유급 육아휴직 기간 및 휴직 후 복직한 여성 비율 ▲성폭력 방지 교육 시행 여부 ▲성폭력 사건에 대한 독립적 외부 조사기관 참여 ▲광고 내 성차별적 요소 사전 검증 ▲경력단절 여성 복직 프로그램 도입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해 해당 기업의 성평등 정도를 측정한다. 

지난 1월에도 ‘GEI 2021’이 발표됐다. 전 세계 44개국, 11개 산업 분야의 380개 기업이 GEI에 편입됐으며, 국내 기업 중에서는 신한금융과 KB금융 등이 포함됐다. 블룸버그는 GEI에 편입된 기업들의 세부적인 성평등 관련 정보를 ‘블룸버그 터미널’을 통해 제공하고 있는데,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투자 대상 기업의 성평등 관련 리스크를 점검하고 투자 결정에 참고할 수 있다. 

 

미국 NGO 케어(Care)는 성평등 기업과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기 위한 쉬트레이즈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젠더 정의' 원칙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 사진=쉬트레이즈 이니셔티브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NGO 케어(Care)는 성평등 기업과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기 위한 쉬트레이즈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를 '젠더 정의' 원칙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 사진=쉬트레이즈 이니셔티브 홈페이지 갈무리

◇ ‘케어(CARE)’의 젠더 정의 투자 원칙

하지만 이조차도 기업의 성평등 정도를 측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생산과 유통에 걸쳐 회사의 전체 의사결정 과정에 성차별적 요소가 얼마나 남아있으며, 여성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되는지 세세하게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피상적인 평가에 그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미국의 비영리단체 케어(Care)는 지난해부터 ‘젠더 관점’ 투자를 넘어 ‘젠더 정의’ 투자를 시행하고 있다. 케어는 사회·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성 창업가 및 성평등 기업 지원을 목표로 하는 ‘쉬트레이즈 이니셔티브’(SheTrades Initiative) 프로젝트다. 

케어는 지난해 7월 발표한 성명서에서 단순히 여성 임원의 수를 세는 것을 넘어 성차별의 근원을 파헤치는 방향으로 젠더 투자 전략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케어는 젠더 정의 투자 전략을 제안했는데, 이는 ①기업문화나 관행, 임직원의 태도에 뿌리내린 무의식적인 성차별 요소를 제거하고 ②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여성 직원과 소비자의 참여를 보장하며 ③의사결정 및 상품제작, 서비스 제공 등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드러나지 않은 성차별적 요소를 검토하고 ④ 투자 성과를 판단할 때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성평등에 대한 기여도 동등하게 고려할 것 등 네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자료=유엔 여성역량강화원칙(WEPs)
성평등은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료=유엔 여성역량강화원칙(WEPs)

◇ 성평등 기업, 성과도 높아... 국내도 성평등 지수 개발 중

젠더 관점 투자에 익숙하지 않은 투자자들은 수익성을 희생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젠더 관점 투자의 성과는 나쁘지 않다. 성평등이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기업 내 성차별을 철폐할 경우 노동자 생산성이 최대 40%까지 높아진다. 산모, 신생아, 아동건강파트너십(PMNCH) 또한 기업이 직원의 출산·육아 및 아동 건강에 투자할 경우 결근률이 낮아지고 이익이 20배까지 증가한다고 강조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베스트먼트(MSCI) 또한 지난 2015년 보고서를 통해, 1643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6.4%나 높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성평등한 기업일수록 더 나은 성과를 낸다면, 성평등한 기업에 대한 투자도 더 나은 수익을 낼 수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지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이 창업한 기업에 대한 투자는 평균 93만5000달러로 남성 창업기업(210만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남성 창업기업이 5년간 66만2000달러를 벌어들이는 동안 여성 창업기업은 그보다 10% 가량 높은 73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이처럼 성평등이 재무적 성과를 위한 중요한 요소임이 입증되면서 국내에서도 해외의 성평등 지수를 벤치마킹하려는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1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ESG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며 ‘위민(Women)’ 지수 개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손 이사장은 “포괄적인 지수보다는 세분화되고 시장요구에 맞는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며 “성평등 지수를 산출해 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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