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시아계 혐오범죄 급증 왜?
美 아시아계 혐오범죄 급증 왜?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4.01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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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잡지 뉴요커가 최근 공개한 표지 일러스트. 사진=뉴요커 인스타그램 갈무리
미국 잡지 뉴요커가 최근 공개한 표지 일러스트. 사진=뉴요커 인스타그램 갈무리

미국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새 표지가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러스트 작가 R. 키쿠오 존슨이 그린 이 표지에는 ‘지연(Delayed)’이라는 제목이 달렸는데, 마스크를 쓴 아시아계 모녀가 지하철 플랫폼에 서있는 모습을 담았다. 어머니는 시계를 확인하며 지하철이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딸은 불안한 듯 어머니의 손을 잡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표지 속 모녀를 감싼 불안감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미국 내 아시아계 혐오 범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심경을 보여준다. 존슨은 지난달 29일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도중 자행된 반아시아 혐오범죄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이번 표지 그림을 준비했다. 뉴스를 접할수록 읽기가 힘들어졌다”며 “너무 많은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표적이 됐다. 나를 가장 사랑해주신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상상해봤다. (표지 속) 어머니는 이 모든 여성들을 위해 그려진 것”이라고 밝혔다. 

존슨이 그려낸 경계심과 두려움은 작가 개인뿐만 아니라 미국 내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감싸고 있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사망한 8명 중 4명의 한국계 여성을 포함해 아시아계 피해자가 총 6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도 재미동포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다.

 

자료=샌버나디오 캘리포니아대학 증오·극단주의연구센터
자료=샌버나디오 캘리포니아대학 증오·극단주의연구센터

◇ 코로나19 이후 반중정서, 아시아계 혐오범죄로 번져

최근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빈번하게 보도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실상 범죄가 늘어난 것은 지난해부터다. 샌버나디노 캘리포니아대학(CSUSB) 증오·극단주의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로스앤젤레스·시카고 등 18개 대도시에서 발생한 혐오범죄는 2019년 1877건에서 2020년 1773건으로 6% 감소했다. 하지만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는 49건에서 120건으로 오히려 149%나 급증했다. 특히, 뉴욕의 경우 같은 기간 3건에서 28건으로 9배 이상 늘어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아직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전반적인 감소 추세 속에서 오히려 아시아계 피해자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아시아인들이 미국 내 혐오범죄의 새로운 타깃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급증하는 아시아계 혐오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반중정책과, 코로나19 이후 강화된 미국 내 중국혐오 정서가 놓여 있다. 카틱 라마크리슈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UC Riverside) 교수는 NBC와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인 대상 혐오범죄의) 상승세를 코로나19와 관련된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차별적 수사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중국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퍼뜨려 (아시아인을 향한) 증오를 부추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각종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 혐오발언이 이전보다 빈번하게 등장해 문제가 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디씨인사이드’로 불리는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과 트위터에서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지난해 1~2월 들어 중국혐오 발언의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 3월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구글트렌드에 따르면 ‘중국 바이러스’, ‘쿵플루(Kung Flu)’ 등 코로나19와 중국을 엮어 비난하는 혐오 표현은 다른 아시아인 혐오 표현에 비해 더 많이 검색됐다.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가 코로나19와 연결된 것이라는 사실은 피해자의 인종별 구성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19일부터 연말까지 전체 아시아계 혐오범죄 피해자 중 중국계(41%)와 한국계(15%)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그 뒤는 베트남계(8%), 필리핀계(7%) 등의 순이었고 그 외는 29%에 불과했다. 

 

2020년 3월~2021년  2월 발생한 아시아계 혐오범죄 피해자의 성별·인종별 구성. 자료=Stop AAPI Hate
2020년 3월~2021년 2월 발생한 아시아계 혐오범죄 피해자의 성별(위) 및 인종별 구성. 자료=Stop AAPI Hate

◇ 아시아계 혐오범죄, 여성·아동·노인 등 취약계층 노려

아시아계 혐오범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범죄의 피해가 주로 취약계층에게 집중됐다는 점이다. 아시아계 인권단체 ‘STOP AAPI HATE’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발생한 아시아계 혐오범죄 전체 피해자의 68%는 여성이었다. 연령별로 봐도 17세 이하의 미성년자 피해자가 전체의 12.6%를 차지했으며, 60세 이상 고령층 비중도 6.2%였다. 

이는 저항이 어려운 여성·노인·아동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아시아계 혐오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사업장(35.4%)이었지만, 길거리(25.3%), 공원(9.8%), 대중교통(9.2%) 등의 비중도 높았다. 실제로 시비가 붙거나 지인 간의 갈등으로 범죄가 발생한다기보다는 처음 보는 아시아인, 특히 여성과 노인·아동을 상대로 갑작스럽게 폭력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아시아계 혐오범죄가 일반 범죄로 취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인종, 종교, 성별 등에 대한 혐오범죄를 가중처벌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통계적 자료 수집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적 동기에 의해 범행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피해자가 입증하지 못한다면 혐오범죄로 취급되지 않아 처벌이 완화된다. 

다른 소수자들을 상대로 한 혐오범죄와 달리 아시아계 혐오범죄의 경우 인종차별적 동기를 입증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하는 올가미나 나치 문양과 달리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뚜렷한 인종차별적 상징이 드물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달 한 중국인 남성이 맨해튼 차이나타운에서 귀가하던 중 예멘 출신 남성에게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가해자가 별다른 비하 발언이나 인종차별적 상징을 사용하지 않아 혐오범죄로 분류되지 않았다. 현지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이유 없는 범죄는 없다”며 수사당국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 바이든 대통령, “침묵은 곧 공모”

한편 아시아계 혐오범죄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바이든 행정부도 강력한 조치를 예고하고 나섰다. 백악관은 지난달 3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反)아시아 폭력행위 증가 대응과 아시아계 미국인, 하와이 원주민, 태평양 섬 공동체의 안전 및 포용 증진을 위한 새로운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위해 아시아·태평양계 단체 및 대표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피해자 지원을 위해 4950만 달러의 기금을 할당할 계획이다.

법무부 또한 아시아계 혐오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예방책을 시행하기 위한 부처 차원의 계획을 수립했다. 연방수사국(FBI) 또한 지방 법 집행관을 대상으로 시민권 교육 행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아시아계 혐오범죄 급증에 대해 “우리의 ‘침묵’은 ‘공모’다. 우리는 공모할 수 없다”며 “우리는 말해야 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가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아시아계 혐오에 대해 '공모'와 '행동'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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