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봄비가 자주 내린다. 빗소리를 영접한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부드럽고 감미롭다. 빗소리는 아린 정적을 깨우고 촉촉함을 안기어온다. 비는 하늘과 땅의 만남이다. 하늘과 땅의 교우이다. 땅이 하늘을 영접하는 소리에 몸도 마음도 평온하다. 만뢰는 빗소리로 가득하다.  빗소리에 혼재된 마음을 일깨워본다. 한국인의 기상과 정신을 생각해 보며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가져본다.

한국인의 한(恨)과 정서를 가진 친숙한 꽃이고, 고향의 향수 속에 동심으로 이끄는 ‘할미꽃’이 피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초로 노고초(老姑草), 백두옹(白頭翁) 이라고도 한다. 꽃줄기가 할머니 허리처럼 구부러지고, 꽃이 질 때 노인의 흰머리처럼 된다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와 달리 강인함과 신비한 색을 가진 ‘동강할미꽃’을 주목한다.

할미꽃은 적자색에 꽃줄기가 휘어진데 반하여 동강할미꽃은 동강의 석회질 바위틈에서 하늘을 향해 보라색 등 다양한 색채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대한민국에만 서식하는 특산식물이며 희귀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학명은 Pulsatilla Tongkangensis Y.N.Lee & T.C.Lee 이다. 속명 폴사틸라(Pulsatilla)는 종(鐘)같이 생긴 꽃의 형태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 종소명 동강엔시스(Tongkangensis)는 강원도 동강을 말하며 명명자는 이영노박사와 이택주원장이다. 1997년 생태 사진가 김정명 선생이 강원도 정선군 귤암리의 석회암 뼝대(절벽)에서 처음 찍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000년 이영노박사가 ‘동강할미꽃’이라고 학계에 보고하여 새로운 종으로 인정받았다.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초장은 꽃필 때는 15cm 정도이고, 줄기에는 전체적으로 흰 털이 많다. 꽃은 4월경에 연분홍색과 붉은 자주색, 보라색 등으로 시간에 따라 다른 색을 보여준다. 꽃송이는 하늘을 향해 피었다가 꽃대가 길어지면서 옆을 향하는데 길이는 1~2cm 정도이다. 유사종에는 긴동강할미꽃, 분홍동강할미꽃, 흰동강할미꽃이 있다고 하는데 국가표준식물목록에는 동강할미꽃과 긴동강할미꽃만이 등재되어 있다.

동강 석회암지대 절벽에서 서식하고 있는 꽃송이를 보노라면 생명의 경외심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물은 어디서 흡수하고, 양분은 어떻게 채취하는지 신비롭고 궁금하다. 답은 말라진 지난해의 ‘묵은 잎’이다. 묵은 잎들은 새벽이슬을 머금어 수분과 양분을 제공한다. 비가 오면 저장소와 호스의 역할을 한다. 또한 햇빛에 수분이 빨리 증발되는 것을 막아 적절한 습기가 유지되도록 한다. 또한 뿌리에서 유기산이 나와 바위속의 양분을 녹여서 흡수하기도 한다.

동강할미꽃 묵은 잎.
동강할미꽃 묵은 잎.

 

꽃말은 ‘슬픈 추억’ ‘충성’이다. 할머니 모습으로 피는 꽃송이에 늙는다는 것이 서럽고 아쉬워 슬픈 추억이 되었다고 하지만 동강할미꽃에서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태를 나만이 간직하고자 무분별하게 굴취 하여 멸종위기에 직면하니 아름다운 자태가 슬픈 추억이 되었으리라. 슬픈 추억을 다시 만들지 말도록 모두가 보호하고 가꾸어 공유하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자.

충성의 의미는 꽃을 의인화하여 풍자한 ‘화왕계(花王戒)’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꽃 중의 왕 모란에게 간신인 장미가 미모와 요염함으로 아첨하자 모란왕은 장미를 총애한다. 할미꽃은 대도와 호연지기로 충언하여 모란왕의 잘못을 깨우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간사하고 아첨하는 간신을 멀리하고, 정직하고 사심이 없는 충신을 가까이 하라는 요지로 요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새겨야할 대목이다. 아니 명심해야할 핵심이다.

충성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말한다. 충(忠)은 마음(心)이 가운데(中)있다는 뜻이다. 중립이요 중앙이다. 좌우에 치우침이 없는 중심이다. 마음속에 중심 하나만 가지고 있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권력자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두 개의 마음으로 환(患)을 초래하지 말자. 이쪽저쪽으로 기울고 방황하며 근심걱정을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다.

[필자 소개] 

30여년간 야생화 생태와 예술산업화를 연구 개발한 야생화 전문가이다. 야생화 향수 개발로 신지식인, 야생화분야 행정의 달인 칭호를 정부로부터 받았다. 구례군 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퇴직 후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야생화에 대한 기술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