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COVID19 심리지원단 '시스터즈 키퍼스' 로고. 사진=서울시
서울시 COVID19 심리지원단 '시스터즈 키퍼스' 로고. 사진=서울시

최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게시판이 일부 남성 누리꾼의 공격으로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가 발생한 곳은 “20대 여성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이해해 자살률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터즈 키퍼스’라는 게시판이다. 

26일 오후 기자가 해당 게시판을 확인해보니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이 게시판은 지난해 9월 생성된 이후 연말까지 겨우 56건의 글이 올라왔다. 올해는 지난 12일까지 단 한 건의 글도 올라오지 않았지만 13일부터 게시판에 비난과 욕설이 도배되기 시작했고, 14일까지 이틀간 무려 800건이 넘는 악성 비난글이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결국 센터 측은 게시판 글쓰기 기능을 잠정 중단하고 “지원단 활동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 외에 전직 시장 및 대통령 사진 게재를 포함한 혐오 및 명예훼손성 게시글 등이 수백 건이 게재되어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겪게 된 것에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며 “ 혐오 발언과 업무방해성 전화, 폭언 그리고 민원 녹취의 유투브 게재, 동시에 해킹 시도 경고가 발생하고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운영자를 사칭하는 게시글의 등장도 벌어져서 사칭 등 심각한 사이버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의 필요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남녀 자살률 변동 추이. 자료=통계청
남녀 자살률 변동 추이. 자료=통계청

◇ 남성 누리꾼 타깃된‘시스터즈 키퍼스’ 게시판 

‘시스터즈 키퍼스’ 게시판이 갑자기 남성 누리꾼의 타깃이 된 것은 20대 여성의 자살예방 지원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이들은 남성의 자살률이 더 높은데도 서울시 예산으로 특정 성별의 자살문제만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남성을 차별하는 것이라며, 지원단의 활동을 비난했다.

이들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의 자살률은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높으며, 이는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돼온 현상이다. 자살률이 점차 상승하는 기간에도 남성과 여성 자살률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완만하게 벌어졌다.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남성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지난 2000년 19.0명에서 2019년 38.0명으로 두 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여성 자살률도 8.4명에서 15.8명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남성에 비해서는 여전히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남성과 여성의 자살률 격차 또한 2000년 2.26배에서 2019년 2.41배로 소폭 증가했다.

남성 자살율이 여성보다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가장 넓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남성의 ‘자살성공률’이 높다는 것이다. 토머스 조이너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폭력적인 문화에 많이 노출되며, 총기 등 위험한 도구에도 더욱 친숙하기 때문에 자살성공률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약물 등을 사용하는데 반해 남성은 목을 매거나 흉기 등 되돌릴 수 없는 자살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소득 수준에 따른 지역별 남녀 자살률 비. 자료=세계보건기구
소득 수준에 따른 지역별 남녀 자살률 비(맨 오른쪽). 자료=세계보건기구

◇ 남녀 자살률 격차, 한국은 고소득 국가 중 낮은 편

남성 자살률이 더 높은데 여성, 특히 20대 여성의 자살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예산을 잘못 사용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성별 자살률 격차라는 단 하나의 수치만으로는 이번 사태를 제대로 조명하기 어렵다.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은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현정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지난 2010년 발표한 ‘한국 자살현상의 특징과 인류학적 연구의 가능성’ 논문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의 자살률보다 높다는 것은 자살 연구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불변의 법칙’”이라며 “전쟁이나 대규모 학살과 같은 특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남녀 자살률 비가 2에서 4사이로 나타나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의 일관된 보고”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한국은 성별 자살률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편에 속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조사대상 183개 국가 중 한국의 남녀 자살률 비(比)는 138위로 하위 25%에 속한다. 남성 자살율이 여성보다 높은 것이 정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여성 자살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국가다. 실제 WHO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자살률은 2019년 기준 183개국 중 세 번째다.

성별 자살 격차에 있어서 한국의 독특성은 비슷한 소득 수준의 국가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WHO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고소득 국가의 남녀 자살률 비는 약 3.5배인 반면, 중·저소득 국가는 1.6배에 불과했다. 

 

자료=보건복지부, 남인순 의원실
자료=보건복지부, 남인순 의원실

◇ 20대 여성 자살률, 전 연령대 중 가장 많이 증가

성별 자살 격차에 있어서 한국의 또다른 특이성은 바로 특정 연령대 여성의 자살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스터즈 키퍼스’가 만들어진 목적이자 지원 대상인 20대 여성이다. 

실제 2019년 20대 여성 자살률은 16.6명으로 전년 대비 25.5% 증가했다. 전 연령대와 성별을 통틀어 이처럼 자살률이 급증한 집단은 20대 여성이 유일하다. 20대 여성 다음으로 자살율이 급증한 집단 또한 30대 여성(20명, 9.3%)이다. 남성은 전체적으로 자살률이 1.4% 감소했으며, 20대 남성의 경우 0.7% 증가, 30대 남성은 7.8%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여성 자살시도자는 8103명에서 935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반면, 남성은 5671명에서 5735명으로 1% 증가했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시도자는 전체의 32.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자료=통계청
자료=통계청

 

한국사회에서 특히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학자들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에서 코로나19라는 재난에 부딪힌 청년 여성들이 실업, 사회적 고립, 폭력 등 심각한 위기에 빠지게 되면서 자살률이 급증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현정 교수는 지난해 9월 정춘숙 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청년 자살 예방 긴급 간담회에서 “현재 20대 여성들이 사회구조 및 문화변동, 세대·계층·성별문제, 코로나19 등 중층적인 위기구조에 놓여있다”며 “1인 가구의 대세화로 일상적 돌봄 및 지지관계 붕괴, 권위주의의 잔재와 가족과 직장 내 성차별 및 젠더폭력 등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IMF 전후 세대로서 각자가 사회적 생존권을 쟁취해야 하고, 비교적 남녀차별을 덜 받고 자란 여성들이 사회에서 경험하는 남녀차별과 젠더폭력에 더 큰 위협을 느끼게 된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재난이 발생하면서 대부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20대 여성들이 1차적 퇴출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물론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는 구체적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자살’과 관련해 가장 긴급한 문제는 “남성 자살율이 여성 자살율보다 높다”는 사실이 아니라 “여성 자살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20대 여성 자살이 한국의 성차별적 문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여성학자들의 분석은 남성 자살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캐나다 정신건강협회(Canadian Mental Health Association, CMHA) 파두스 호세이니(Fardous Hosseiny) CEO는 “남성은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우울증에 대해 도움을 구하는 대신, 스트레스를 숨기거나 해로운 행동을 통해 우울증을 해소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카운티 자살예방위원회 또한 2017년 보고서에서 중년 남성의 자살율이 높은 이유는 다른 집단에 비해 치료나 도움을 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남성 자살율이 여성보다 높은 이유가 자살성공률이 높기 때문만이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가 남성에게 부여한 성역할(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 남성) 때문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성별 자살 격차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문화가 놓여있다는 분석이 ‘남성 역차별’이라는 악의적인 비난 때문에 쉽게 배제돼서는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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