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트위터에 올라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6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오른쪽에 '포장'이라고 적힌 비고란을 잘라내 사실을 왜곡했다. 자료=트위터 갈무리
15일 트위터에 올라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6월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오른쪽에 '포장'이라고 적힌 비고란을 잘라내 사실을 왜곡했다. 자료=트위터 갈무리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법카’(공무원 법인카드) 사용내역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당초 정 청장을 비판하기 올라온 자료였지만, 누리꾼들은 오히려 정 청장에 대해 안쓰럽다며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지난 15일 한 트위터 계정이 “질본 정은경, 카드 내역서라 함, 판단은 알아서들”이라는 글과 함께 ‘2021년 6월 청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캡처한 이미지를 올렸다. 해당 자료에는 지난달 32건, 399만5400원의 구체적인 사용내역이 들어있는데, 대부분 코로나19 관련 회의와 참여 인원에 대한 식비로 쓰였다. 

최근 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인해 방역당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 청장을 비판하기 위해 업무추진비 내역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해당 자료가 올라온 직후 일부 누리꾼은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등 방역조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 청장이 다수 인원과 식사를 했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또한 이날 라이브 방송에서 해당 자료를 거론하며 정 청장을 비판했다. 가세연은 “5명 이하 모임이 전혀 없다”,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시간이 수상하다”, “카드깡을 한 것 아니냐”며 정 청장에게 의혹을 제기했다.

 

6월 질병관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원본. 맨 오른쪽 비고란에 '포장'이라고 적혀있다. 자료=질병관리청
6월 질병관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원본. 트위터에 올라온 자료와 달리 맨 오른쪽 비고란에 '포장'이라고 적혀있다. 자료=질병관리청

◇ 원본 자료 왜곡한 트윗발 가짜뉴스, 정 청장 응원 목소리↑

하지만 이러한 의혹은 처음 업무추진비 내역을 올린 트위터 계정이 자료 일부가 보이지 않도록 왜곡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질병관리청이 공개한 원본 자료를 확인하면 모든 식사는 해당 식당에서 직접 한 것이 아니라 ‘포장’해온 것으로 나와 있다. 회의 후 참여 인원이 회의를 마친 뒤 외부에서 포장해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한 셈이다. 실제 여준성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15일 페이스북에 “정은경 청장님은 포장 후 식사도 따로 드신다”며 “혹시 모를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라고 해명했다. 

식비를 결제한 시각 또한 대부분 점심시간 이전인 오전 11시경이다. 정 청장과 질병관리청 직원들이 인근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면 오히려 낮 12시가 넘은 시각에 결제가 돼있어야 한다. 하지만 처음 자료를 올린 트위터 계정은 파일 우측에 ‘포장’이라고 적힌 비고란을 의도적으로 삭제해 올렸다. 마치 정 청장이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라는 원칙을 어긴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이렇게 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정 청장이 업무추진비를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다른 청급 기관에 비해 질병관리청의 업무추진비 사용금액은 다소 많은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업무 부담이 크고 빈번하게 회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방역당국의 업무추진비 사용 규모가 이전보다 늘어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게다가 사용처 또한 고급 식당이 아닌 질병관리청 인근의 흔한 식당 또는 분식집이 대부분이다. 총 사용액과 대상 인원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식사마다 1인당 약 1만5918원이 쓰였으며, 가장 ‘비싼’ 식사를 한 날도 1인당 2만6400원이었다. 가장 적게 쓴 날은 공항철도 서울역사 도너츠 전문점에서 오전 8시경 5명이 5000원을 사용했다. 아침을 1인당 1000원으로 때운 셈이다. 

원본 자료의 내용이 밝혀지자 누리꾼들은 오히려 정 청장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한 달 30회가 넘는 회의를 진행하며 방역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정 청장에 대해 안쓰럽다며 좀 더 비싼 음식을 먹으라는 당부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지금 일하는 걸 보면 삼시세끼 소고기 드셔도 될 것 같은데 안 드셔서 논란인가”라며 “여유롭게 드신 게 아니라 다 포장이라던데, 바쁜 와중이 식사라도 잘 챙기라”는 트윗을 남겼다. 또 다른 누리꾼도 “5명에서 도넛 5000원이면 1인 1도넛도 못 먹고 회의한 것”이라며 “한 달간 회의를 30회 넘게 하면서 열일 중인데 먹는 걸로 뭐라 하니 치사하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러한 방식의 의혹제기는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누리꾼은 “문재인 대통령이 싫다고 정 청장까지 욕하는 게 맞나 싶다”며 “사적 모임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비난해봤자 사회생활 안 해본 티만 낼 뿐”이라고 꼬집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본 트위터 이용자들이 응원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본 트위터 이용자들이 응원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사진=트위터 갈무리

◇ 가짜뉴스 악용한 방역당국 흔들기

정 청장이 가짜뉴스에 휘말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국회에 출석해 백신 RFID(무선주파수인식기술) 도입 의무화와 관련해 “백신의 온도를 확인할 수 있는 인디케이터를 붙이거나 유통 관리에 대한 부분은 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답했다가, 해당 발언이 접종자 몸에 RFID를 부착한다는 내용의 가짜뉴스로 짜깁기돼 곤란을 겪기도 했다.

일부 보수성향 단체에서는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를 근거로 정 청장의 해임을 요구해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에서 반박 자료를 제시한 적도 있다. 실제 지난해 한 단체는 정부가 중국 후베이성 입국 제한조치를 해제한 이후 확진자가 급증했다며 방역실패의 책임을 물어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와 정 청장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지난해 8월 10일 중국 후베이성에 적용한 입국제한을 해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체부에 따르면, 8월 10일부터 19일까지 후베이성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외국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후베이성에서 입국한 ‘한국인’은 13명이 있었지만, 이들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거쳤으며 확진자로 판정된 경우는 없었다. 

한편, 최근 여야는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위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정 청장의 출석을 요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4차 대유행의 책임소재를 두고 여야 간 정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방역당국의 책임자에게만큼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날선 말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여야 모두 최소한의 선은 지킨 셈이다. 문 대통령 또한 지난 14일 이같이 합의한 여야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방역당국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가능하다. 정 청장은 이미 최근 백신 예약과 관련해 빚어진 혼란과 관련해 강도 높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방역당국에 대한 비판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선 넘은 가짜뉴스를 통한 방역당국 흔들기는 코로나19 상황을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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