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녹색소비' 어디까지 왔나
한국의 '녹색소비' 어디까지 왔나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09.06 16: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진천몰 홈페이지 갈무리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를 수용한 충북 진천군의 쇼핑몰에 최근 주문이 몰려 서버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진천몰 홈페이지 갈무리

“이런 곳은 '돈쭐'을 내줘야 합니다”

최근 충청북도 진천군의 비영리 쇼핑몰인 ‘진천몰’ 사이트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버 이상이나 해킹이 아니라 주문이 폭주했기 때문.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를 도운 특별기여자들을 수용하며 환영 메시지를 보낸 진천에 ‘돈쭐’을 내줘야 한다는 소비자들이 몰린 덕분이다. 

진천몰을 향한 소비자들의 ‘돈쭐’은 ‘착한 소비’의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에는 품질이나 가격을 주로 고려했다면, 최근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까지 고려한다. 설령 ‘가성비’가 상대적으로 나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와 부합한다면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착한 소비’는 점차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 코로나19가 불러온 글로벌 트렌드, 기후 고려한 ‘친환경 소비’

‘착한 소비’의 가장 대표적인 가치 중 하나는 ‘친환경’이다.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자신의 소비가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로 만들어진 전력을 사용하거나 재활용 및 분해가 어려운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 품질이나 가격과 관계 없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이러한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식품수출정보(KATI)는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미 수년째 유행 중인 유럽의 윤리적 소비 트렌드는 코로나19 보건위기를 계기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글로벌컨설팅 회사 ‘액센처’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약 60%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한 소비를 하게 됐다고 답했다. 또한, 이 가운데 90%는 향후에도 바뀐 소비습관을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친환경 시장 규모도 점차 커지는 추세다. 영국 토양협회에 따르면, 영국 유기농시장은 지난해 10월 기준 전년 대비 9.5% 성장해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클레어 맥더멋 영국 토양협회 이사는 ”소비자들이 환경과 생물다양성을 고려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며 ”유기농 인증을 받은 식품은 투명성과 진실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자료=한국소비자원
자료=한국소비자원

◇ 한국의 ‘녹색소비’ 어디쯤 왔나?

국내에서도 기후를 고려한 소비행태가 확산되는 경향은 해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발표한 ‘코로나시대 소비행태 변화와 시사점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000명의 설문조사 참여자 중 53.8%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제품을 이용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 이전보다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구매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답한 응답자도 41.3%였다. 

실제 시장 규모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월 발표한 ‘녹색제품 민간부문 소비 현황 및 활성화 방안’ 보고서에서 “국내 녹색제품의 시장규모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자료는 많지 않으나,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볼 때 녹색제품 시장은 연간 10% 내외의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환경표지 인증제품은 2020년 기준 169개 제품군 1만7969종으로 지난 10년간 2.5배 증가했다. 인증제품 시장판매 규모 또한 지난해 기준 약 30조원으로 10년 전보다 2배 가량 늘어났다. 

 

향후 구매 의향이 있는 친환경 제품. 자료=KB경영연구소
향후 구매 의향이 있는 친환경 제품. 자료=KB경영연구소

◇ 텀블러 수집이 친환경 소비? 소비자 선택지 다양화 필요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친환경 소비에 선뜻 동참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KB경영연구소가 5일 발표한 ‘소비자가 본 ESG와 친환경 소비 행동’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친환경 소비를 하기 어려운 이유는 습관화되지 않았고(25%) 불편하며(20%) 비용이 더 들기 때문(17.7%)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고 착한 소비를 하려고 해도 제품이나 서비스가 다양하지 않아서(15.7%)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의 구매 경험이 가장 많은 친환경 제품은 텀블러나 스테인리스 빨대 등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제품”이었으며 그 뒤는 ▲폐기물이 자연 분해되는 제품 50.3% ▲내용물이 친환경적인 제품 36.9% ▲업사이클링·재활용 제품 19.7% 등이었다. 생산 및 폐기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품보다는, 다른 제품의 소비를 줄여 간접적으로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제품의 소비 경험이 많다는 것. 

텀블러나 에코백, 스테인리스·실리콘 빨대의 경우 가격대도 높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 소비 입문용으로 적절하다. 하지만 이런 제품들은 오래 쓰임으로써 일회용 제품의 소비를 줄이기 때문에 '친환경' 제품인 것인데, 커피 프랜차이즈 등에서 빈번하게 새 제품을 출시해 구매 주기가 짧아지면서 친환경 소비의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많다.

텀블러의 경우 소재에 따라 15~40회 가량 사용해야 환경 보호 효과가 발생하는데, 계절마다 새로 나오는 각종 커피 프랜차이즈의 MD상품을 모으다 보면 오히려 텀블러때문에 환경이 오염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친환경 소비가 확산되려면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지고, 폐기 후에도 잘 분해되는 등 기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품의 구매 기회를 늘려야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9명은 친환경 제품을 다시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는데, 특히 폐기물이 자연 분해되는 제품(52%)과 친환경적인 제품(48.6%)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구매 경험이 가장 많은 반영구적 제품보다 다른 제품에 대한 구매 의사가 높다는 것은, 국내 기업들이 친환경 제품 라인업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반 제품 대비 친환경 제품 구매 시 추가 지출 가능 비용. 자료=KB경영연구소
일반 제품 대비 친환경 제품 구매 시 추가 지출 가능 비용. 자료=KB경영연구소

◇ 저가 제품일수록 추가 비용 고민해야

친환경 소비에 드는 추가 비용 또한 예민한 문제다. 아무리 가격보다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다고 해도, 일반제품보다 지나치게 비쌀 경우 선뜻 장바구니에 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54.3%는 “10% 이내의 추가 비용을 내고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즉, 국내 소비자 2명 중 1명은 친환경 소비를 위해 10% 이상의 추가비용은 감내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대체재가 많은 저가품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스탠포드대학교 연구진이 지난 2008~2009년 미 동부지역 대형 마트 26개 지점에서 일반 커피에 ‘공정무역’이라는 라벨를 붙인 뒤 판매량 변화를 조사한 결과, 라벨을 붙이기 전보다 판매량이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공정무역 라벨을 붙인 커피의 가격을 인상하자 고급커피의 판매량은 오히려 2% 증가한 반면, 저렴한 커피의 판매량은 30% 가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저가 제품일수록 친환경 소비에 대한 가격 저항이 심할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 소비 트렌드를 따라잡하야 하는 기업들에게도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