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 한국인 수상자 없는 이유는?
노벨과학상, 한국인 수상자 없는 이유는?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10.0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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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스웨덴 노벨재단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벨재단 유튜브 갈무리
지난 4일 스웨덴 노벨재단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벨재단 유튜브 채널 갈무리

[뉴스로드] 노벨상의 시즌이 돌아왔다. 스웨덴 노벨재단이 지난 4일 노벨 생리의학상을 발표하며 시작된 이번 시상식은 물리학·화학·문학·평화·경제학 등 총 6개 부문별로 진행되며, 11일 경제학상 발표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될 때가 되면 “왜 한국 과학계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나?”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실제 노벨 과학상 부문의 수상자 대부분은 북미 및 유럽에 집중돼있으며 아시아 지역 수상자는 드물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24명이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중국도 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반면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뿐 과학부문 수상자는 아직 없다.

◇ 이번에도 ‘기초연구’ 수상, 노벨과학상 타려면 뿌리부터 다져야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 역사는 다른 국가보다 비교적 짧아 오랜 연구업적의 축적이 필요한 노벨상 수상에서 불리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재능있는 과학인재가 배출되고 있음에도 후보로도 거론되는 인물이 드물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국내 과학계는 한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어디서 찾고 있을까? 연구자들은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 부족 ▲안전지향적인 연구문화 ▲청년 인재 홀대 등을 한국 연구환경의 문제로 꼽고 있다. 

실제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아뎀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는 질병의 치료제나 즉각 현실에 적용가능한 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인체의 촉각·통각의 원리를 분자의 수준에서 규명한 기초연구 업적을 이뤄 수상자로 선정됐다. 

5일 발표된 세 명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조르지오 파리시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자대 교수 또한 기초 물리학자다. 그는 원자에서 행성 규모에 이르는 물리적 시스템의 무질서와 변동의 상호 작용을 발견한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했다. 

올해 노벨 재단의 수상자 선정은 노벨 과학부문 수상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기초과학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 78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핵심연구를 시작한 뒤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31.2년이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것을 요구받는 환경에서 이처럼 긴 호흡이 필요한 기초과학 연구자들이 꾸준히 성과를 쌓아올리기는 어렵다. ‘국가과학자 1호’로 알려진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IBS) 명예연구위원은 지난 3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질문일수록 답을 찾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더 많은 성과를 내려면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2008~2017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핵심연구를 시작한 뒤 수상까지 걸린 시간. 자료=한국연구재단
2008~2017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핵심연구를 시작한 뒤 수상까지 걸린 시간. 자료=한국연구재단

◇ ‘실패’ 수용하며 ‘혁신’ 독려하는 연구문화 필요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오랜 시간 기초과학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복된 실패를 수용하면서 혁신적인 연구를 독려하는 연구문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과학자들이 ‘실패’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기란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여러 차례의 실패를 넘어서야 하는 기초연구보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안전한 연구를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6월 발표한 ‘한국 연구개발(R&D) 문화는 무엇인가’ 보고서에서 미국·독일·일본·이스라엘과 한국의 연구문화를 비교하며 ▲실패를 두려워하는 리스크 회피 문화 ▲단기적 성과 추진 문화(유행가 연구문화) ▲도전·혁신·변혁적 연구문화 미흡 ▲장기·안정적 연구 추진 생태계 조성 미비 등을 국내 연구문화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반면 비교대상에 오른 국가들은 이와 달리 혁신을 장려하고 실패를 수용하는 연구문화를 통해 뛰어난 연구업적을 올리고 있다. 1945년 7월 발간된 이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설립의 기초가 된 보고서 ‘과학, 그 끝없는 전선’(Science, The Endless Frontier)는 “과학의 자유를 유지하라”는 것을 핵심철학으로 제시하고 있다. 각종 압력단체 및 국가로부터의 자유, 단기적 연구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의 자유가 보장돼야 혁신적인 기초과학 연구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것. 당시 미국 과학계는 과학 진흥을 경제부흥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던 루스벨트 정권을 설득해 이러한 철학을 관철시켰고, 이러한 정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연구문화로 이어졌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부터 형성된 장인문화가 과학계로 흡수돼 한 우물을 파면서 연구성과를 축적하는 연구문화가 조성됐다. 하지만 플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면서 과학기술정책이 성과 중심으로 변경됐고, 연구자 간 경쟁을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는 경쟁적인 환경이 조성됐다. 경쟁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단기적 성과와 일시적 유행에 집중하게 됐다. 그 결과 기초연구보다 사회적 과제나 경제적 가치창출을 위한 연구가 우선시되면서 과학기술 경쟁력 또한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한국연구재단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연구문화에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창의적·혁신적·장기적·개방적인 우리만의 독특한 연구개발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9월 16일 '청년과학기술인과의 대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9월 16일 '청년과학기술인과의 대화'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 과학계 청년 인재, '학생'보다 '연구자'로 대우해야

과학계 내부의 수직적 서열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제 막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청년 인재들이 교수와 학생 간 수직적 서열문화로 인해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청년과학기술인과 과기정통부 장관과의 대화’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날 간담화에 참여한 최지훈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화학공학 박사과정생은 “교수의 학생 지도가 연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원생의 인건비, 출퇴근, 휴가사용, 졸업까지 전권이 지도교수에게 달린 상황에서 학생이 교수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며 “학생 입장을 배려하는 교수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도적 연구를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이준영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과학기술경영정책 박사과정생 또한 “창의적인 연구활성화를 위해서는 연구문화 및 제도개선에 앞서 대학원생에 대한 인식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구자가 아닌 학생이라는 인식에서는 수직적 문화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며 “학생이 아닌 연구자로서 인식하고 안정적 임금과 충분한 휴식을 보장한다면 창의적 연구에 힘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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