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말 '돈'에 미친 나라일까?
한국은 정말 '돈'에 미친 나라일까?
  • 임해원 기자
  • 승인 2021.11.25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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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의미와 만족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국가별 응답 순위. 자료=퓨리서치센터
"당신의 삶에 의미와 만족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국가별 응답 순위. 자료=퓨리서치센터

[뉴스로드] “한국은 ‘돈’에 미친 나라”

최근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위와 같은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18일 발표한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에 대한 여론조사 보고서를 인용한 이 글은 한국이 조사대상 17개국 중 유일하게 ‘돈’을 1위로 꼽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 글은 평균적으로 17개국 응답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족’이라며, 한국은 가족을 1위로 꼽지 않은 3개국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본 누리꾼들은 “헬조선에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고속 성장과 IMF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인간적 가치가 실종되고 있다” 등 비관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물질적 풍요', 돈보다 다양한 가치 담은 범주

하지만 실제 보고서 전문을 읽어보면 한국은 돈이 미친 나라라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우선 설문 문항에 대한 해석이 틀렸다. 해당 문항은 퓨리서치센터의 세계 태도 조사(2021 Global Attitudes Survey)에 포함된 것으로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29일까지 갤럽을 통해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퓨리서치센터는 응답자에게 “현재 당신 삶의 어떤 측면이 의미 있거나 만족스러운가?”(What aspects of your life do you currently find meaningful, fulfilling or satisfying?)라는 질문을 던진 후 나온 답변을 여러 개의 범주로 분류했다. 카테고리에는 가족, 친구, 사회, 자유, 직업, 취미, 건강 등이 포함됐으며, 국내에서 ‘돈’으로 번역된 보기는 ‘물질적 풍요’(Material well-being)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물질적 풍요’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삶의 질과 안정성을 의미한다. 응답자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물질적인 필요나 자신이 소유한 것, 또는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언급한 경우 ‘물질적 풍요’로 분류됐다. 실제 보고서가 제시한 ‘물질적 풍요’의 범주에는 돈이나 사치품, 부유함뿐만 아니라, 삶의 질, 자가 소유, 안전, 보안, 현재 소유에 대한 만족감, 주거환경, 안정적 소득과 고용 등 다양한 답변이 포함됐다. 

부유한 삶뿐만 아니라 평범하고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도 ‘물질적 풍요’로 분류된다. 보고서가 인용한 한국인의 ‘물질적 풍요’ 관련 응답에는 “일용할 양식”,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수입”, “부채 없음”, “오토바이를 타거나 여행을 즐기기에 충분한 돈” 등이 포함돼있다. 한국인이 답변 중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한국인이 삶의 의미나 만족감을 ‘돈’에서만 찾는다고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퓨리서치센터의 질문에 단수 응답을 제시한 비율. 한국은 62%로 전체 평균(34%)의 두 배 가까이 높다. 자료=퓨리서치센터
퓨리서치센터의 질문에 단수 응답을 제시한 비율. 한국은 62%로 전체 평균(34%)의 두 배 가까이 높다. 자료=퓨리서치센터

◇ 단수 응답 많은 한국, 모든 범주에서 응답 비율 낮아

또 다른 문제는 한국과 다른 국가가 이번 설문에 응답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설문은 “당신의 삶에 의미와 만족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나온 답변을 14개의 범주로 분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연히 여러 개의 응답이 나올 수 있지만, 한국은 유독 단 한 가지의 응답만 제시한 경우가 62%나 됐다. 17개국의 ‘단수 응답률’ 중간값은 34%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며, 호주나 미국의 경우 한 가지 응답만 제시한 경우가 23~24% 수준에 그쳤다. 유일하게 일본의 경우 59%가 한 가지 응답을 제시해 한국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이 때문에 한국은 모든 범주에서 낮은 응답률을 보인다. 실제 한국인 응답자 중 ‘물질적 풍요’를 언급한 비율은 19%로 17개국 중간값과 동일하다. 가장 높은 스페인은 ‘물질적 풍요’ 응답 비율이 42%나 되지만 건강(51%)에 밀려 2위에 그쳤다. 스페인의 경우 복수 응답 비율이 높아(단수 응답률 24%) 다수의 범주에서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나 이탈리아도 ‘물질적 풍요’ 응답률이 각각 33%, 29%를 기록해 한국보다 높았지만, 가족·직업 등의 범주에 밀려 순위는 2~3위에 머물렀다. 반면 한국은 단수 응답이 많으니 ‘물질적 풍요’가 19%라는 비율만으로도 1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인 응답자가 삶에 의미나 만족감을 주는 요소를 여러 개 꼽지 않고 단 하나만 제시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설문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어 전화를 일찍 끊었거나 복수응답을 해도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삶의 가치를 단면적으로 바라본다는 해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번 보고서를 “한국은 (다른 국가보다 훨씬 더) 돈에 미친 나라”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보고서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흥미로운 사실이 포함돼있다. 한국은 단수 응답이 많은 만큼 모든 범주에서 응답률이 낮았지만, 특정한 삶의 요소를 언급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삶에 대해 긍정적”(Something generally positive)이라고 답변한 비율은 12%로 높았다.

조사대상 17개국 중 한국보다 삶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높은 국가는 독일(17%)뿐이다. 반대로 “일반적으로 삶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변한 비율도 14%로 17개국 중 이탈리아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보고서는 긍정적 답변의 경우 고령층이, 부정적 답변의 경우 저소득·저학력층이 많았다고 해석했다. 다만 한국에서 상반된 답변이 모두 다른 국가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반면 단수 응답이 많았음을 고려해도 다른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응답률이 낮은 범주도 있었다. 특히, ‘직업·경력’의 경우 한국은 6%에 불과했는데, 17개국 평균은 24.3%, 중간값은 25%였다. ‘취미·여가’ 또한 다른 국가는 대부분 10% 수준의 응답률을 보인 반면 한국은 겨우 3%에 불과했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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