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디파짓포토

[뉴스로드]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낮추는 ‘탄소중립’이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화석연료 기반의 기존 에너지·산업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의 탄소중립적 구조로 전환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탄소중립 전환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아무리 정부의 의지가 강하더라도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기는 불가능하다.

◇ 탄소중립 필요하지만 비용 부담은 ‘글쎄’

국내에서도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다. 이는 다양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일 전국 성인 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현재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달성 목표 시점인 2050년이 너무 이르다며 추진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응답한 경우는 13.5%에 불과했다. 28.7%는 적당하다고 답했고, 가장 많은 42.4%의 응답자는 탄소중립을 더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지난 10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1509명 중 91.5%가 탄소중립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또한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대해서도 앞당겨야 한다는 응답이 43.1%, 적당하다는 의견이 37.7%였다. 

 

자료=리얼미터
자료=리얼미터

이처럼 탄소중립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형성된 상태지만, 전환비용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기후변화센터와 한국환경연구원 등이 지난달 일반국민 1600명과 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국민의 50.5%는 탄소중립 이행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으로 ‘탄소세, 전기요금, 세금 등 추가비용 발생’을 꼽았다. 

또한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삶의 질이 낮아지지 않는 수준 또는 혜택을 받는 만큼 감수하겠다”는 응답이 50.8%로 가장 많았다. “비용부담의 설득력 있는 제안이 없어 부담할 의사가 낮다”는 응답은 22.6%였으며, “탄소중립 달성에 책임을 느껴 비용과 불편을 최대한 감수하겠다”는 응답은 19.3%에 불과했다. 

현재 월 평균 전기요금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추가 부담 가능한 금액은 ‘5000원 이하’가 54.3%로 가장 많아, ‘1만5000원 이상’이 41%로 가장 많았던 전문가 집단과는 상반되는 경향을 보였다. 전력요금 개편으로 거주 지역의 전기요금이 오르면 수용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요금 상승분에 따라 결정하겠다”가 64.7%로 가장 많았으며, “수용할 의사가 없다”는 22.7%, “수용하겠다”는 응답은 7.4%에 불과했다. 

 

자료=기후변화센터
탄소중립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 및 비용 및 불편 감수 의지. 자료=기후변화센터

◇ 천문학적 탄소중립 전환비용, 사회적 합의 시급

아직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을 위해 얼마나 큰 비용이 필요하고 얼마나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비용부담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은 상당히 높은 상태다. 어느 정도의 불편과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결코 쉽지 않다. 탄소중립 전환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 만큼, 사회적 합의 없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 주요국의 탄소중립 예산은 천문학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연세대학교 연구팀을 통해 수행한 ‘탄소중립 추진방안 및 관련 재정정책에 관한 국제적 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한 유럽 투자계획(SEIP)을 통해 오는 2027년까지 약 1조 유로(약 1347조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영국 또한 녹색산업혁명을 위한 10대 중점계획을 추진하면서 2030년까지 50억 파운드(약 7.9조원)를 투자하는 한편, 민간투자를 유도해 총 120억 파운드(약 19조원)가 투자되도록 할 방침이다.

‘그린 뉴딜’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탄소중립 투자계획은 그 규모가 더욱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향후 8년간 2조 달러(약 2376조원)가 투입되는 아메리칸 잡 플랜(American Jobs Plan)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에는 인프라 개선과 기후위기 대응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주요국별 탄소중립 주요 정책 및 주요 투자금액. 자료=국회예산정책처

물론 이는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으로의 이행을 위해 투자할 예산일 뿐, 실제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은 어느 정도일지 확실히 추산하기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현재 글로벌 GDP의 2.5% 수준인 에너지 부문 투자를 4.5%까지 늘려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GDP가 1933조원임을 고려하면 연간 87조원의 투자를 해야 에너지 부문의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월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에는 구체적인 전환비용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있지 않다.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비용과 재원마련 계획이 없다면, 비용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나마 정부는 지난 10일 발표한 ‘산업·에너지 탄소 중립 대전환 비전과 전략’에서 오는 2025년까지 민간 33조원, 정부 61조원 등 총 94조원을 청정에너지 전환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 등의 조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탄소중립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신속하게 시작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 탄소중립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 중인 정부가 탄소중립의 당위성뿐만 아니라 비용부담에 대해서도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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