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사진=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뉴스로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촉법소년의 연령을 기존 만 14세 미만에서 12세 미만으로 하향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청소년 범죄가 대선정국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안 후보는 지난 9일 페이스북을 통해 “범죄를 게임으로 여길 만큼 죄의식이 없는 아이들을 배려하기보다는 선량한 우리 아이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촉법소년 기준을 낮추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이어 “단순히 처벌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가해 청소년이 자신의 행위로 피해자가 얼마나 고통 받는지 깨닫게 해주고, 피해자도 가해자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해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를 통해 상처를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회복적 사법’에 기반한 프로그램 이수를 의무화하겠다고 덧붙였다.

◇ “촉법소년 폐지하라” 국민청원 봇물

현행 형법 9조는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형사미성년자’로 규정하고,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사처벌 대신 소년법에 따라 보호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촉법소년이라는 점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면서,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실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촉법소년’을 검색하면 수천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낸 촉법소년 폐지 청원이 거의 매달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가 식당에서 행패를 부린 중학생들을 엄벌해달라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A씨에 따르면,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는 중학생들에게 훈계를 하자 다음날 10여명의 중학생이 몰려와 식당 테이블을 엎고 손님을 내쫓는 등 행패를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도 “미성년자 처벌법(촉법소년법)은 잘못 되었습니다. 개정하여 주세요. 나라가 미성년자 범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초등학교 앞에서 무인문구점을 운영하는 중 초등학생들의 절도로 약 600만원의 피해를 입었으나,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경찰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조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10일 오후 4시 현재 해당 청원에는 1만321명이 동의한 상태다. 

이처럼 현행법을 악용한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촉법소년 수는 2016년 6576명에서 2020년 9606명으로 4년간 3030명(46.1%)나 증가했다. 법원 통계에서도 촉법소년으로 처리된 사건은 2016년 6834건, 2020년 1만112건으로 3278건(48%) 증가해 경찰 통계와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실제 21대 국회에는 안 후보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전용기·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만 12세로 하향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만 13세를 제안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촉법소년을 폐지하거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청원이 다수 올라와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촉법소년을 폐지하거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청원이 다수 올라와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촉법소년 기준, 해외 입법도 각양각색

문제는 촉법소년 기준 하향과 처벌 강화가 청소년 범죄에 대한 비판여론만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전용기 의원안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는 ▲소년법에 따른 보호관찰 및 보호처분이 가능하고 ▲어린 소년에게 형사처벌을 하는 경우 수용기간 동안 범죄성향을 학습할 수 있으며 ▲촉법소년 기준연령 하향 시 소년범에 대한 낙인 효과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등의 부작용이 열거돼있다. 

해외에서도 촉법소년 연령 기준과 처벌 강도 및 법제동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소년사법제도 개선에 관한 기존 논의와 새로운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10세), 캐나다(12세), 미국(주별로 6~10세) 등 영미법계의 촉법소년 기준연령은 대체로 한국보다 낮은 편이지만, 독일(14세), 프랑스(13세) 등은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기준 연령이 낮다고 해서 꼭 소년범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는 추세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강력한 처벌을 받은 소년범의 재범률이 높고 재범에 걸리는 기간도 짧았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보고된 데다 인종차별 등의 이슈까지 겹치면서 엄벌주의에서 탈피해 교정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다. 영국 또한 지난 2015년 구금시설에서 출소한 소년범 중 67%가 1년 내 재범한다는 충격적인 통계 결과가 발표되면서, 재범방지에 초점을 맞춘 소년사법체계 개혁이 추진됐다. 

반면 일본의 경우 1997년 14세 중학생에 의한 고베 아동연쇄살인사건 이후 소년법 폐지 여론이 확산되면서 엄벌화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존 16세였던 촉법소년 기준 연령이 14세로 낮춰졌고, 소년원 송치 대상 연령 또한 12세에서 11세로 하향됐다. 18세 미만에 대한 징역 상한은 15년에서 20년으로, 가석방 최소 기간은 3년에서 형기의 3분의 일로 연장됐다. 

이처럼 해외에서도 몇 살부터 형사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청소년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촉법소년 기준 연령 하향 및 처벌강화를 추진할 것인지, 재범 방지를 위한 교정프로그램에 힘을 쏟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도 국가별로 판이하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도 매번 촉법소년 기준연령을 하향하자는 법안이 발의되지만 뚜렷한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법사위 보고서 또한 관련 법안에 대해 “시대 변화에 따른 소년의 성숙도 및 발달정도와 소년범죄의 현황, 촉법소년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해외 입법례 및 국제적 인식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유보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14세에서 12세로 촉법소년 기준을 하향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안 후보는 촉법소년 기준을 하향하는 한편 교정프로그램 및 윤리·사회성 교육을 강화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안 후보가 던진 촉법소년 논의가 대선정국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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