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최종안. 사진=환경부
환경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최종안. 사진=환경부

[뉴스로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K-택소노미(Taxonomy)’에 원자력을 포함할 것인지를 두고 정부와 업계, 환경단체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원자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위해 막대한 위험이 따르는 원자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부딪히는 모양새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달 30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최종안을 발표했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순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등 6대 환경목표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을 분류한 것이다. 금융기관은 녹색분류체계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되는 녹색경제활동과 친환경을 위장한 ‘그린워싱’(Greenwashing)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녹색금융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또한 녹색분류체계에 따라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된 산업은 금융시장에 조기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환경부 발표 이후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원자력의 포함 여부다. 녹색분류체계는 탄소중립 사회및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인 ‘녹색부문’과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중간과정으로서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경제활동인 ‘전환부문’으로 구성된다. 환경부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화석연료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과도기적 에너지라며 ‘전환부문’에 포함시켰다. 반면 LNG와 마찬가지로 과도기적 에너지로 기대를 받고 있는 원자력은 결국 최종안에서 배제됐다.

◇ "EU도 원자력 포함했는데..." 업계 불만 고조

업계에서는 해외에서도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고 있는 추세인데 환경부가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실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31일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회원국에 전달했는데, 여기에는 천연가스뿐만 아니라 2045년까지 건설 허가가 난 원자력 발전을 ‘녹색투자’로 분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원자력 발전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한다는 업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화석연료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공백을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만으로 메울 수 없으며 ▲원자력은 화석연료는 물론 재생에너지보다도 탄소배출량이 적은 청정에너지라는 것이다. 

실제 유럽 에너지 분야 컨설팅 업체 에너데이터(Enerdata)에서 발표한 ‘세계 에너지통계 2021’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전력생산에서 신재생에너지(수력 포함)가 차지하는 비중은 28%다. 노르웨이의 경우 신재생에너지 점유율이 98.4%로 매우 높지만, 이는 대부분 발전단가가 저렴한 수력발전 덕분이다. 브라질, 뉴질랜드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60%를 넘는 국가도 수력발전이 아닌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아직 높지 않다. 

특히 한국은 7.1%로 조사 대상 국가중 뒤에서 7번째에 불과하다. 지속적으로 탈석탄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전력생산의 약 30%를 담당하는 원자력을 배제하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추진하기에는 메워야 할 전력공백이 너무 크다. 

원자력이 화석연료에 비해 온실가스를 매우 적게 배출한다는 점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 중 하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력이 전력을 생산하는 모든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kWh당 12g(중앙값)인데, 이는 풍력(11g)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41g), 수소(24g) 등보다도 낮다. 원전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대안적 에너지로 꼽히는 이유다. 

◇ 환경단체, "원자력은 '녹색'이 될 수 없다"

반면 기후 관련 연구기관이나 환경단체 등은 원자력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벤저민 소바쿨 영국 서식스 대학교 교수가 지난 2020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5년간 123개국의 전력생산 및 탄소배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원자력 비중과 탄소배출량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재생에너지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는 통계적으로 입증됐다. 

또한 원자력 발전이 탄소배출 저감효과가 있다고 해도 우라늄 채굴이나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에서 확인된 잠재적 위험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게 될 경우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하는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원자력 발전설비는 건설과 운영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동안 재생에너지를 도입할 경우 줄어들 탄소배출량은 기회비용으로 남게 된다. 

EU의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 발전이 포함됐다는 사실 또한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력생산의 70%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가 EU의 핵심 국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한 결과일 뿐, 전체 회원국이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인식하지는 않는다는 것. 실제 AFP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레오노레 게베슬러 오스트리아 환경부 장관은 EU 집행위의 초안을 전달받은 뒤 트위터를 통해 “원자력은 위험하고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EU의 계획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부 장관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는 것은 “실수”라며, 원자력이 “파괴적인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EU 집행위가 발표한 초안에는 2045년까지 건축허가를 받았고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부지·자금·계획을 갖춘 경우에 한해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EU의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됐지만 한시적이고 강력한 조건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며 “한국이 EU보다 조건을 유연하게 할 수는 없지 않겠다”라고 반문했다. 설령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다고 해도 유럽 이상의 엄격한 단서가 추가될 수 있다는 것. 

한편 국내 환경단체에서도 EU의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근거로 원전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후솔루션,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환경운동연합 등은 지난 6일 공동 성명을 내고 “원전은 본질적으로 ‘녹색’이 될 수 없는 심각한 오염원”이라며 “이미 심각하게 후퇴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까지 포함해야 한다면 녹색분류체계는 원칙을 저버린 누더기가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어 “녹색분류체계는 분명하게 기후위기에 기여할 수 있으며, 다른 환경적 오염·위험 역시 없는 경제활동을규정하고 이러한 항목에 금융투자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위험하고 반환경적인 에너지원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는 것은 원전에 녹색분칠(Green Washing)을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