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퇴직자 재취업업체가 따낸 수의계약은 924억원

/K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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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회 국토위원회 소속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 등으로부터 제출받아 3일 공개한 자료에는 LH가 최근 7년간(2016년~2022년 6월 말 기준) 2급 이상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와 8051억원(150건)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음이 드러나 있어 충격을 줬다.

자료에 따르면, 2급 이상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가 LH로부터 따낸 계약은 수의계약 924억원(52건), 제한경쟁 5017억원(16건), 일반경쟁 2101억원(79건), 기타(협상 계약) 9억원(3건)으로 나타났다.

수의계약 사유로는 설계(디자인) 공모가 22건(42%)으로 1위, 비밀·보안상의 이유가 21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 설계 공모는 LH가 퇴직자 재취업 업체와 불공정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사례로 지난 6월 감사원 감사에서 지적됐다. LH는 자사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가 심사 직전 평소 알고 지내던 내부 심사위원과 사전 접촉했는데도 감점 등 제재를 가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다.

비밀·보안을 이유로 한 수의계약도 남발되고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국가계약법상 수의계약은 국가안보나 외교 관계, 공익목적 등 사유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체결할 수 있다. LH는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등으로 이미 후보지가 공개된 지역의 용역계약도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바 있다.

조 의원은 제한경쟁 입찰도 전관예우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일반경쟁 입찰과는 달리, 제한경쟁 입찰은 실적·면허·지역을 제한해서 발주처인 LH가 입찰자 자격을 통제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LH가 2급 이상 고위직 퇴직자의 재취업만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LH의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임원만 대상이던 재취업 심사대상자를 사장·상임이사·감사 등에서 2급 이상 전직 직원으로 확대했다. 시행령 개정 이전에 퇴직한 2급 이상 직원이나, 3급 이하 직원이 재취업한 업체에 대한 실태는 알기 어렵다. 지난 7년간 퇴직한 3급 이상 LH 직원은 849명인데, LH가 관리하는 2급 이상 퇴직자는 7명이다.

전관 채용 업체들이 LH 설계용역 수의계약의 절반을 따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해 3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015~2020년 체결된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을 분석한 결과, LH 퇴직자 90명이 재취업한 건축업체 47곳이 전체 계약의 55.4%(297건)을 따냈다고 밝혔다. 계약금액은 6582억원으로 전체의 69.4%였다. LH 퇴직자가 재취업한 용역업체들은 이 기간 건설사업 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 중 39.7%(115건)을 수주했다. 계약금액은 3853억원(48.0%)이었다.

조오섭 의원은 “LH는 고위직 퇴직자 재취업 업체들에게 지속적인 수의계약, 제한입찰 등의 방법으로 불공정 계약를 해왔다”며 “LH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관예우 관행을 청산하고 계약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감사원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실태 보고서' (22년 6월 발행)
출처: 감사원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실태 보고서' (22년 6월 발행)
출처: 감사원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실태 보고서' (22년 6월 발행)
출처: 감사원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실태 보고서' (22년 6월 발행)

한편, 3일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문제는 해당 규정이 모호해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와 '관행적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약은 '일반 경쟁'으로 하는 게 원칙이나, 국가 안전 보장과 외교 관계, 공익 목적,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항으로 '비밀리에 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LH는 지난 6월 감사원 지적 이후 "수의계약 업무지침에서 '해석 기준 사례 중 사업후보지 지정제안도서 작성'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퇴직자 재취업 업체와의 관행적 수의계약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LH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후보지가 공개된 53건도 ‘비밀리에 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면서 수의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7월 관련 규정을 개정한 이후에도 후보지 관련 용역 10건을 추진하면서 이전 규정을 근거로 수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계약 업무가 부적절하게 처리됐다.

LH가 공정성을 위해 구성한 심사평가위원회 제도 또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LH와 퇴직자 재취업 업체가 계약을 체결한 332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총 평가 58건에서 내부심사·평가위원 59명이 업체에 재취업한 퇴직자에게 전화를 받는 등 사전 접촉이 있었지만, ‘사전 접촉·설명, 비리·부정행위 여부 확인서’에 이를 표기하지 않았다.

사전 접촉했다는 내용을 제출하자 업체에 경고장을 발부하는 게 전부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게 이 의원 측 지적이다.

특히 이 의원실이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LH는 감사원의 통보 후 3개월이 지났음에도 사전접촉 관련 자체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지난 6월 LH 사장에게 "입찰에 참여한 업체가 심사·평가위원에게 사전접촉·설명해서 심사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신고 의무를 위반한 위원을 제재하는 방안을 마련하라", "사전접촉을 하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은 내부위원들을 자체 조사 후 적정한 조치를 하도록 하라"고 통보했는데, LH가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LH가 이번달 평가위원 및 업체에 자체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국감을 앞두고 '면피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종배 의원은 “사전에 불공정 행위를 적발하지 못한 것도 문제인데 지난 6월에 통보된 것을 국정 감사를 앞두고 이제야 조사한다는 것을 볼 때 LH에 처벌 의사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런 ‘직원 감싸기’ 때문에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부동산 투기 등 기강 해이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수의계약과 관련해 규정 개정 후에도 임의로 퇴직자들에게 일감을 몰아준 직원들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해야 할 것”이라며 “(심사평가위원회를) 외부위원으로 선정하더라도 사전 접촉이 이뤄지면 공정성이 훼손되는 만큼 사전 접촉 적발 시 위원 배제·업체 입찰 참가 제한 기간 연장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스로드] 박혜림 기자 newsroad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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