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포털에 올라온 지난해 하반기 동아제약 채용 면접 후기. 사진=잡플래닛 홈페이지 갈무리
취업 포털에 올라온 지난해 하반기 동아제약 채용 면접 후기. 사진=잡플래닛 홈페이지 갈무리

“여자는 군대 안 갔으니까 남자보다 월급 덜 받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질문은 지난해 하반기 동아제약 채용 면접에서 한 여성 지원자가 면접관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이 여성과 함께 면접을 보게 된 다른 남성 지원자 두 명은 어느 부대에서 군복무를 했고, 군 생활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군대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질문 받았다.

면접관의 성차별적 의도가 묻어난 면접을 치르고 난 지원자는 한 취업 포털에 “인사팀은 여성인 나를 배척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군가산점과 군복무 관련 질문을 했다”며 “여성은 절대 채용하지 않겠다는 인사팀의 굳은 의지를 보았다”는 후기를 남겼다.

불쾌했던 면접 후기가 올라온 지 약 3개월 뒤, 동아제약이 달라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2’과 협업해 저렴한 가격에 생리대를 공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16년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이 생리대를 구입할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이나 휴지를 사용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국민적 공감을 사면서 생리대를 저렴하게, 혹은 무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동아제약의 이번 협업 시도도 여성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성차별적 채용문화를 가진 기업이 여성친화적 이벤트를 벌이는 모순은 곧 대중의 분노를 샀다. 네고왕2 영상을 본 여성 지원자가 동아제약의 이중적인 행태가 우습다는 내용의 댓글을 남겼고, 이는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최호진 동아제약 대표는 유튜브 댓글을 통해 “당시 면접 매뉴얼에서 벗어나 지원자를 불쾌하게 만든 질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해당 지원자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이번 건으로 고객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진화에 나섰다. 

'성차별'이라는 말이 빠진 최 대표의 사과는 오히려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여성 지원자는 8일 카카오 브런치에 “문제의 질문을 한 사람은 면접관 중 한 명이 아닌 인사팀장으로, 동아제약의 면접 매뉴얼을 만드는 사람”이라며 “이는 단순히 ‘면접관 중 한 명이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은’ 문제가 아니며 ‘불쾌’라는 단어로 갈음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최 대표의 사과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당시 면접에서 일어난 상황이 회사의 성차별적 조직문화와 무관하지 않다며 동아제약에 “제대로 된,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다시 요구했다.

지난 6일 최호진 동아제약 대표가 유튜브 댓글을 통해 채용과정에서 일어난 성차별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지난 6일 최호진 동아제약 대표가 유튜브 댓글을 통해 채용과정에서 일어난 성차별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 공기업 공공기관도 성차별적 채용 관행 

이미 다수의 기업이 고용 성차별 문제로 수차례나 비판과 처벌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이 같은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채용시장에서 ‘성차별’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제인지를 보여준다. 

최근 가장 크게 이슈가 된 것은 금융당국의 조사로 드러난 금융권의 성차별적 채용 비리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2015년 서류전형에서 남성 지원자 113명의 점수를 높이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췄다. 신한은행 또한 지난 2013~2016년 서류전형부터 최종합격까지 남녀 성비를 3대1 수준으로 인위적으로 조정했다. 하나은행도 2013년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에서 남녀 합격자 비율을 4대1로 맞췄다. 만약 성차별적인 채용관행이 없었다면 하나은행 서류전형을 통과했을 여성 지원자는 619명이나 늘어난다. 은행권, 또는 금융권 전체로 확대하면 수천명의 여성 지원자들이 불합리한 이유로 채용시장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보다 성평등한 채용에 앞장서야 할 공기업이나 공공기관도 성차별적 채용문제에서 예외는 아니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지난 2016년 철도장비 운전분야 무기계약직 공개 채용에서 여성 지원자 6명의 면접 점수를 과락인 50점 미만으로 일괄 조정해 탈락시켰다. 여성이 맡을 수 없는 직무라는 이유에서다. 감사원의 지적에 서울메트로가 내놓은 것은 여성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수정한 것은 “면접위원의 재량”일 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었다.

이처럼 채용 성차별이 여러 차례 문제가 됐음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명시적으로 차별적인 채용 기준이 드러나는 ‘직접차별’이 아니라, 겉으로는 동등한 기준이 적용되지만 결국 여성에게 불리한 결과가 도출되는 ‘간접차별’의 방식으로 채용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아제약처럼 모든 면접자에게 “군 생활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동일하게 던지고 그 답변에 따라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면, 이 질문에 답할 경험이 없는 여성 지원자는 모두 탈락할 것이다. 실제 지난 2011년에는 중증 청각장애인 지원자를 고려하지 않고 영어능력시험 점수를 지원자격으로 내건 기업이 인권위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모든 지원자에게 적용되는 조건이 동일하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간접차별도 법적으로 금지돼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2조 1항은 “사업주가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은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이 다른 한 성에 비하여 현저히 적고 그로 인하여 특정 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며 그 기준이 정당한 것임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에도 이를 차별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간접차별에 대한 개념이 구체적으로 확립되지 못한 데다 그 기준도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기 때문에 성차별적 채용의 피해자가 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관련 법률이나 피해구제 규정, 관할 기관도 통일돼있지 않다. 법안만 마련돼있지 실질적으로는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간접차별의 폐해가 채용 단계에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차별적 채용 관행을 방치할 경우, 직무 배치와 승진 기회, 임금 차별이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채용기준은 동등하게 적용되지만 정작 중요 직군에는 남성 지원자가 더 많이 뽑히게 되고, 채용 이후에는 중요 직군에 채용된 남성 직원이 여성보다 더 핵심적인 직무에 배치되며, 이로 인한 인사평가의 차이로 승진 기회도 남성이 더 많이 잡게 된다. 결국 근속기간이 오래될수록 남성 직원이 여성 직원보다 더 많이 살아남고,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되는 고용구조가 지속되는 것이다. 

동아제약 채용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여성 지원자는 9일 카카오 브런치에 올린 글에서 “‘82년생 김지영’이 타임지 100권에 올랐을 정도로 성차별에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2020년에 면접에서 저런 질문을 받았다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었고, 82년생 김지영과 90년생인 제가 아직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1982년으로 역주행하는 기업들의 채용 성차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전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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