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기준 한국 금융이해력 점수. 자료=금융감독원
2018~2020년 OECD 평균 대비 한국 금융이해력 점수. 자료=금융감독원

코로나19 이후 과잉 유동성의 시대가 계속되면서, 저축보다는 투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글로벌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투자를 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자산 증식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성급하게 투자에 뛰어들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 지난해 ‘동학개미의 난’이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로 주식 입문자가 늘어나면서, 주식 리딩방 등 잘못된 정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금융지식과 신중한 투자태도를 갖춘 뒤 금융투자에 입문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금융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금알못’ 상태로는 잘못된 정보와 위험한 투자행태를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학개미’들의 ‘금융이해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30일 발표한 ‘2020 전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6.8점으로 OECD 10개국 평균인 62점(2019년 기준)보다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OECD 평균에 미달했던 2018년(62.2점)에 비해서도 4.6점 상승한 것이다.

‘금융이해력’은 합리적이고 건전한 금융생활을 위해 필요한 금융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정도를 의미한다. 금융당국은 OECD 산하 경제․금융교육에 관한 글로벌 협력기구(INFE)가 제시한 표준방법론에 따라 ▲금융지식(합리적인 금융생활을 위해 갖추어야 할 지식) ▲금융행위(건전한 금융·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행동양식) ▲금융태도(현재보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의식구조) 등 세 분야에 걸쳐 금융이해력을 측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8월 10일부터 10월 30일까지 2400가구를 대상으로 시행됐다.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 “미래보다 현재” 청년층 금융태도 낮은 점수

‘동학개미의 난’과 암호화폐 상승장을 거치며 금융투자에 친숙해진 만큼 한국인의 금융이해력이 OECD 평균보다 높아졌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신호다. 금융이해력이 높을수록 위험한 투자를 피할 수 있고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능력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결과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조사 분야와 연령,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잠재적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우선 한국인은 금융이해력을 구성하는 세 부문 중 금융지식(73.2)과 금융행위(65.5) 점수는 양호했지만, 금융태도(60.1)점수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OECD/INFE가 제시하는 부문별 최소 목표 점수 이상인 사람의 비중을 보면, 금융지식과 금융행위가 각각 68%, 61.9%인 반면 금융태도는 39.9%에 불과했다.

금융태도는 소비와 저축, 현재와 미래, 돈의 존재가치 등에 대한 선호도를 나타내며, 점수가 높을수록 저축과 미래를 중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청년층(18~29세)의 경우 58.9점으로 중장년(30~59세)·노년층(60~79세)에 비해 낮은 금융태도 점수를 기록했다.

또한 청년층은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한다”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34.2%로 반대 응답률(26%)보다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를 선호하는 청년층의 금융행위 점수(60.1점)는 저축을 선호하는 청년층(63.7점)보다 저조했는데, 이는 당장의 소비를 중시하는 경향이 가계관리, 재무점검, 저축, 정보에 입각한 금융상품 구매 등 다양한 금융행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청년층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을 뿐, 취약한 금융태도는 전 연령층에 걸친 문제다. 특히 장기적인 재무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저축을 하고 있다는 응답한 경우는 97%(OECD 11개국 중 2위)로 매우 높았지만, 장기 재무목표를 설정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겨우 43.5%(7위)에 불과했다. 

노년층의 경우 전반적인 금융이해력(62.4)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태도 점수(노년층 62.3, 전체 평균 60.1)는 다른 연령층보다 높았지만 금융지식(65.9, 전체 평균 73.2)에서 차이가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노년층에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사기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 남성보다 높은 여성 수익률, 이유는?

성별에 따른 금융이해력의 차이도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금융지식은 높았지만(남 74.4점, 여 72점), 금융행위(남 64.9점, 여 66.2점)와 금융태도(남 58.9점, 여 61.3점)는 오히려 여성보다 점수가 낮았다. 남성이 이자나 인플레이션, 분산투자 등 각종 개념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건전한 금융행위와 미래를 대비하는 금융태도는 여성이 더욱 잘 갖췄다는 것이다. 

건전한 금융행위와 신중한 금융태도는 금융자산 증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NH투자증권이 지난해 계좌를 개설한 고객들의 성별·연령대별 수익률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수익률이 높은 계층은 30대 여성(25.98%)과 40대 여성(25.73%)이었으며, 20대 남자(3.81%)와 30대 남자(11.29%)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기업 재무자료를 분석하고 업황을 파악해 투자를 하는 자신보다 삼성냉장고가 쓰기 좋다며 삼성전자에 투자한 아내의 수익률이 더 높다고 한탄하는 한 남성 투자자의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이 투자자의 푸념이 괜한 소리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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