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적 금융기관(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의 2011~2020년 해외 석유 및 천연가스 사업에 제공한 금융지원 규모.(단위: 조원) 자료=기후솔루션
국내 공적 금융기관(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의 2011~2020년 해외 석유 및 천연가스 사업에 제공한 금융지원 규모.(단위: 조원) 자료=기후솔루션

[뉴스로드]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금융권에도 ‘녹색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온실가스를 과도하게 배출하는 산업에 대한 투자를 지양하고, 친환경소재나 신재생에너지 등 기후위기 대응이 필수적인 산업에 좀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 

하지만 일부 금융사들이 제대로 된 기준 없이 ‘녹색 투자’라는 이름만 앞세워 기업 이미지를 세탁하는데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오히려 금융권 전반에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12일 발표한 ‘글로벌 금융회사의 그린워싱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녹색투자에 앞장서고 있는 해외 대형 금융사들도 ‘그린워싱’(Greenwashing)으로 비판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워싱은 녹색(Green)과 세탁(Washing)의 합성어로 실제로는 친환경 경영과 거리가 멀지만 비슷한 것처럼 홍보해 친환경 이미지로 세탁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실제 도이치뱅크 계열 운용사인 DWS의 경우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규모를 부풀리기 위해 ESG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펀드를 ESG 상품으로 분류·공시했다가 적발된 바 있다. DWS는 2020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전체 운용자산(9천억 유로)의 절반에 해당하는 4590억 유로가 ESG 관련 자산이라고 발표했으나, 전 책임자가 실제 ESG 적합 펀드는 극히 일부라고 폭로하면서 지난 8월부터 미·독 양국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말로만 ESG 경영을 선언하고 실제로는 화석연료 기업에 자금을 조달해 비판을 받은 사례도 있다. HSBC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30년까지 약 1조 달러 규모의 기업 에너지 효율화 지원계획을 발표했으나, 정적 화석연료 파이낸싱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은 빠져있어 비판을 받았다. 

실제 2016년(파리협정) 이후 HSBC의 누적 화석연료 파이낸싱 규모는 1108억달러로 세계 13위에 해당한다. 기관투자자들까지 HSBC의 가짜 ESG 경영 선언을 비판하고 나서자 결국 HSBC는 2030년까지 신흥국 화석연료 파이낸싱을 중단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국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금융권에 ESG 열풍이 불면서 다수의 금융사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대부분 기존에 투자했던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중단계획을 밝히지 않아 환경단체로부터 비판을 사고 있다. 실제 신한금융, KB금융, NH농협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사는 모두 그룹 차원의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보험·증권 계열사는 여전히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실제 전국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는 지난 5월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관련 회사채 인수에 참여한 증권사 6곳(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증권,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에 신규 인수를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전달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 가운데 KB증권과 신한금투는 모두 그룹 차원의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 또한 지주사가 탈석탄을 선언한지 석 달 만에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발행에 나서 비판을 받았다. 

민간 금융사만 탓할 것도 아니다. 기후솔루션이 지난 8월 발간한 ‘국내 공적금융기관의 해외 화석연료 투자 현황과 문제점’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한국산업은행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해외 석유 및 천연가스 사업에 제공한 자금만 총 141조 1804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녹색 투자’가 계속될 경우, 금융사 또한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 DWS는 ESG 허위 공시 논란에 휘말린 이후 기업 이미지 훼손은 물론 주가가 하루 만에 14% 가까이 폭락하는 소동을 겪어야 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그린워싱은 금융회사의 이미지 훼손에 따른 영업력 위축, 기업가치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엄격한 내부검증과 예방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외부 평가체계가 완성되기 이전에라도 엄격한 내부검증 시스템을 마련·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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