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가습기 살균제' 국가 배상 책임 처음으로 인정
"국립환경과학원이 흡입독성을 충분히 검토했어야"

서울 서초동 법원 삼거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사회자가 관련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4.2.6)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법원 삼거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주최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세퓨 제품피해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사회자가 관련 제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2024.2.6) [사진=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국가가 책임이 있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6일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유해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민사합의 9부는 이날 판결문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앞서 1심은 '공무원이 당시 시행 중인 법을 따랐으므로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행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라는 논리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상고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환경시민단체는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배상 범위가 제한돼 한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와 관련해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2003년 당시 유해물질관리법(현재 화학물질등록평가법)에 따라 유해성 심사를 실시해 '급성경구독성이 낮고 피부·눈에 자극·부식성이 있거나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도 아니며 돌연변이를 유발할 물질도 아니다'라는 이유로 유독물이나 관찰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당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판정이었지만 '흡입독성'에 대해 더 유의해 판단하는 '적극행정'이 필요했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조사에서 PGH 유해성 심사를 신청한 업체가 신청서에 물질 '배출경로'에 '제품에 첨가(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 등)'라고 명시한 점이 드러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국립환경과학원이 흡입독성을 검토했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환경부는) 화학물질(PGH와 PHMG)이 음식물 포장재 등의 용도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유해성이 낮고 환경에 미칠 영향이 적으므로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심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화학물질이 심사된 용도 외 용도로 사용되거나 최종제품에 다량 첨가된 경우는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물질 자체의 유해성이 충분히 심사·평가되거나 안전성이 검증된 것도 아닌데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이라고 일반화해 공표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재판부는 "환경부는 화학물질이 용도 및 사용방법에 관한 아무런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면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손해배상 소송 법원 판단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나 유족에게 국가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그래픽=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피해 손해배상 소송 법원 판단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나 유족에게 국가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그래픽=연합뉴스/이재윤 기자]

2008년∼2011년 PGH와 PHMG 성분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 후, 일부 사람이 원인 모를 호흡기 질환을 앓거나 그로 인해 사망했고, 피해자들은 2014년 8월 국가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2016년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국가에 대한 청구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한 바 있다. 

[뉴스로드] 홍성호 기자 newsroad01@newsroad.co.kr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