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H지수 평균 손실률 53.6%
금융당국, '책임 분담 기준안' 마련
금융권도 배상안 검토 중
적합성 원칙 인정 범위가 문제

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올해 들어 불과 한달여 만에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흐름과 연동된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규모가 5000억원을 넘어섰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판매 금융기관에 '배상안' 또는 '책임 분담안'을 요구하는 투자자와 금융 당국의 압박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은행권도 배상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판매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 위반 사례를 스스로 얼마나 폭넓게 인정할지가 관건이다.

그에 따라 배상 범위나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기초 ELS 상품 가운데 올해 들어 지난 7일까지 모두 9733억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왔다. 이 중 고객이 돌려받은 돈(상환액)은 4512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은 53.6%(손실액 5221억원/원금 9733억원)에 달한다. 

H지수가 5000 아래로 떨어진 지난달 하순 만기를 맞은 일부 상품의 손실률(58.2%)은 거의 60% 수준이다. 9일 현재 H지수는 5306으로 2021년 당시 고점(약 12,000)의 절반을 밑돌았다. 

올해 전체 15조 4000억원, 상반기에만 10조 2000억원의 H지수 ELS의 만기가 도래하는 만큼, H지수가 큰 폭으로 반등하지 못하면 전체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금융당국도 조만간 관련 대책을 내세울 것으로 예측된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마지막 주까지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점검하거나 추가 검사에서 문제점을 발굴해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책임·손실) 분담 기준안'이라고 신중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은행권은 결국 금융 당국이 사실상 '배상안' 가이드라인(지침)을 이달 말 전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복현 원장은 "금융회사들이 검사 결과에 따라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할 수 있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당국의 분담 기준안과 별개의 금융사 자율 배상안도 주문했다.

금감원은 적합성 원칙을 위반했는지, 설명의무를 위반했는지, 부당 권유를 했는지 등으로 불완전 판매 유형을 분류한 바 있다. 그리고 각 피해 주장 사례가 세 가지 유형에 어느 정도 해당하는지 점수를 매겨 높을수록 많은 배상을 결정했다.

노후 대비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은퇴자에게 ELS와 같은 고위험·고수익 파생금융상품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 등을 금융사가 권유한 것은 적합성 원칙 위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ELS 판매 과정에서 금융사가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설명의무 위반이나 부당 권유 유형이다.

홍콩ELS 손실 5000억원 넘어 [사진=연합뉴스]
홍콩ELS 손실 5000억원 넘어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은행권이 '자율 배상안'과 향후 배상 과정에서 ELS 판매 과정상 적합성 위반을 당국이나 투자자들의 기대만큼 많이 인정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표준영업행위 준칙 등을 적용해 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가입상품 위험등급을 고지했고, 매뉴얼에 따라 소득·연령대·직업·가입 경험·손실 감내 수준 등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져 취합된 점수에 따라 공격적 투자 성향으로 분류된 투자자만을 가입시킨 만큼 대부분 '적합성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아직 기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은행이 자율 배상안을 먼저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은행들도 ELS 판매 과정이 100%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다만 적합성 원칙 위반 여부의 경우 여러 다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적합성 원칙 위반을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하면, 외국인 등 주주들이 반발하거나 배임을 주장할 수 있는 만큼 법무법인 등과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로드] 강동준 기자 newsroad01@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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