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 감사원의 자료 요청 후 삭제한 530개의 파일 중 북한 관련 파일 17개의 목록(왼쪽)과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의 내용 일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 감사원의 자료 요청 후 삭제한 530개의 파일 중 북한 관련 파일 17개의 목록(왼쪽)과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오른쪽)의 내용 일부.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자료 중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야당은 정부가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는 야당이 북풍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앞서 SBS는 지난달 28일 검찰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공소장 내용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SBS에 따르면, 산업부가 지난 2019년 감사원의 자료 요청 후 삭제한 530개의 파일 중 17개는 북한 관련 문건이었으며, 이들 모두 ‘60 pohjois’(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라는 상위 폴더에 들어 있었다. 

특히, 문서 목록 중에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과제’, ‘북한 전력산업 현황과 독일 통합사례’ 등의 문건이 들어있어, 정부가 비밀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SBS의 보도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입장문을 내고 “정권이 국내 원전을 불법으로 폐쇄하고 북한에 원전 건설을 지원하는 이중적 행태로 명백한 이적행위”라며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산업부는 1일 문제가 된 문건을 공개하며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향후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이며, 추가적인 검토나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이 그대로 종결됐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 바란다”며 에둘러 야당의 비판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북한 원전' 관련 기사량 추이(위) 및 핵심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북한 원전' 관련 기사량 추이(위) 및 핵심 연관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 핵심 연관 키워드는 ‘이적행위’... 부활한 색깔론

북한 원전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면서 언론 또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빅카인즈를 통해 ‘북한’과 ‘원전’이 모두 포함된 기사를 검색한 결과, 관련 소식이 처음 알려진 지난달 28일부터 2일 현재까지 54개 매체에서 총 1232건의 기사와 25건의 사설이 쏟아졌다. 날짜별로는 SBS가 처음 보도한 지난달 28일 7건이 보도된 후 기사량이 폭증하기 시작해, 산업부의 해명이 나온 이달 1일에는 437건의 기사가 집중 보도됐다. 

북한 원전 관련 기사에서 인물명과 기관명 등을 제외하고 가장 자주 등장한 연관 키워드는 ‘이적행위’였다. 이는 이번 논란으로 인해 그동안 잠잠했던 색깔론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 ‘이적행위’는 야권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이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서 “김종인 위원장의 원전 관련 ‘문재인 정권 이적행위’ 발언은 토씨 하나 틀린 말이 없다”며 김 위원장의 발언을 지지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31일 “북한 원전 지원이 이적행위가 아니면 무엇이 이적행위인가”라며 “문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우리가 특검과 국정조사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당정 또한 ‘이적행위’라는 표현에 집중해 반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거짓을 토대로 대통령을 향해 '이적행위'라고까지 공격했으면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일갈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1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1994년 민자당이 집권했던 시절 1조5000억원을 들여 북한에 실제로 경수로까지 지원했다. (김 위원장 말대로라면) 이거야말로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라"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라"고 말했다. 사진=청와대

◇ "청와대, 의혹 밝혀야..." vs "야당, 무책임한 색깔론"

보수 성향 언론은 정부의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북한 원전 관련 의혹을 투명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사설에서 “(정부 해명대로) ‘공무원의 검토 아이디어’라면 감사원 조사 직전 일요일 밤에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자료를 지울 필요가 뭐가 있나.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pohjois’, ‘북원추’라는 약어를 사용해 왜 처음부터 감췄나. 이런 의문에 청와대는 구체적 해명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며 “무언가 크게 제 발이 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또한 “산업부의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지도 않은 아이디어 차원의 내부 자료’란 해명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고위 공무원들이 일요일 심야시간에 몰래 사무실에 들어가 없애려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진실을 밝힐 책임과 능력이 있는 청와대와 정부가 이 사안을 정쟁으로 몰고 가면서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런 태도를 보면 왜 그토록 최재형 감사원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했는지 짐작이 간다”고 강조했다. 

반면 진보 성향 매체는 야권의 ‘이적행위’ 주장은 고루한 색깔론이라고 비판해고 있다. 한겨레는 1일 사설에서 “야당이 정부 정책을 비판·검증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정황과 심증만으로 ‘이적행위’로 규정해 이념 대립을 부추기고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건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며 “국익을 생각하는 책임 있는 야당이라면 남북관계처럼 민감한 사안에선 더욱 냉철하게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하고 합당한 근거를 갖춰 의혹을 제기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또한 “북핵 외교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는 주장은 기본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다는 점을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이전에 북한에 원전을 짓는 것 자체가 국제법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며 “야당은 한국 정부가 마치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단독으로 극비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양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야당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다면 ‘북핵 외교의 ABC’도 모르는 한심한 정당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좀 더 상세한 설명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일보는 1일 사설에서 “보수 정권도 대북 발전 지원 사업을 검토했었다. 적절한 절차와 목적에 따라 진행된다면 대북 지원을 문제삼기는 어렵다”면서도 “정부는 문서 삭제로 논란을 야기한 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좀 더 성실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이 ‘법적 조치 등 강력 대응’을 밝히고 ‘남북정상회담에서 원전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정도로는 의혹이 불식되지 않는다”며 “삭제된 문서들이 언제, 어떤 성격으로 작성된 것인지를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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