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00여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상향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 사진=위민비지니스(We Mean Business Coalition) 연합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300여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상향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 사진=위민비지니스(We Mean Business Coalition) 연합 홈페이지 갈무리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 대응이 전 지구적인 과제로 떠오르면서, 탄소 배출에 무관심했던 기업들의 태도도 변하고 있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탄소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주요 기업 300여개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 이하로 감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과거 오바마 정부가 세운 목표의 두 배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6~28%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CEO들은 서한에서 “온실가스 배출 제로(0)의 미래 촉진과 탄탄한 경제 회복, 수백만개의 질 좋은 일자리 창출, 팬데믹 이후 더 나은 미국의 재건을 위해 과감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필요하다”며 “청정 에너지와 에너지 효율성, 청정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는 더욱 강력하고 공평하며 포용적인 미국 경제를 건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우리 중 대부분은 파리 협약 이후 기후과학에 발맞춰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웠다”며 “만약 대통령이 국가적인 목표를 상향한다면 우리 또한 미국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자체 목표를 상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서한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시총 상위권 빅테크 기업들을 비롯해, 스타벅스, 맥도날드, 버라이즌, 나이키, 이베이, 필립모리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의 굵직한 대기업들이 동참했다.

미국 주요 기업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9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이베이, 펩시 등 75개 기업의 CEO들이 양당 상·하원의원들을 만나 기후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이 요구한 입법안 중에는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와 같이 기업 입장에서 민감한 내용도 포함돼있다. 탄소가격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에 배출량에 비례한 비용을 부담시키는 제도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강력한 규제 수단 중 하나다.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관련 준비 정도에 대한 기업들의 응답.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관련 준비 정도에 대한 500대 기업들의 응답. 잘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기업이 24.8%에 불과하다.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 국내 기업, 기후위기 대응 어디까지 왔나?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기업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맞서 상당한 비용 부담 증가를 감수하면서도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강화되고 있는 ‘그린 뉴딜’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재계도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중 삼성·현대차·SK·롯데·포스코·한화·GS 등 7곳이 이미 ESG 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특히 삼성, SK 등은 자체 연구기관을 설립해 환경·사회 지표를 계량화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에너지 분야 등 기후위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산업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에는 두산중공업, 디엘(DL)에너지, 에스케이 이앤에스(SK E&S), 이원(E1), 지에스(GS)에너지, 포스코에너지, 한화에너지, 현대자동차, 효성중공업 등 9개 에너지기업 CEO들이 모여 ‘에너지 얼라이언스’ 출범을 선포했다. 세계적인 탈탄소 흐름에 맞춰 관련 정책에 공동 대응하고 사업 전략을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아직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탄소가격제를 도입하는 등 기후 관련 규제를 직접 요구하는 미국에 비해 국내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편이다. 특히, 탄소중립과 관련된 정책이 추진될수록 경영상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가 지난해 발표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기업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 119개를 대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72.9%가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기업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경제·사회적 상황’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53.8%였다. 

환경문제를 포함해 ESG 경영 전반에 대한 준비도 10대 그룹을 제외하면 아직 부실한 편이다. 전경련이 지난 2일 발표한 ‘ESG 준비실태 및 인식조사’에 따르면 매출 500대 기업 중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설립했거나 관련 실무조직을 운영하는 곳은 각각 17.8%, 23.8%였다. 10대 그룹 중 7곳이 ESG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과는 큰 차이다. 

특히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과 관련된 준비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잘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곳이 24.8%에 불과했다. 37.6%는 ‘보통이다’라고 답했으며, ‘미흡하다’고 답한 기업도 19.8%였다. 

해외 주요 기업들이 규제 부담에도 불구하고 직접 탄소배출 감축을 주장하는 이유는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산업구조의 변화가 진행되면서 기업들의 생존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규제와 비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대비가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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