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Plan 0)’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요 대선후보들의 기후위기 토론회 참석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임해원 기자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Plan 0)’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요 대선후보들의 기후위기 토론회 참석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임해원 기자

[뉴스로드]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48일을 남았지만, 주요 대선 후보들은 차기 정부의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가족 검증’의 진흙탕 속을 헤매고 있는 모양새다. 정책과 공약이 실종된 선거에 실망한 청년들은 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인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서만큼은 대선 후보들이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청년기후단체네트워크 ‘플랜제로(Plan 0)’는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대선이 ‘기후대선’이 돼야 한다며, 주요 대선 후보들에게 ‘기후위기 원포인트 토론회’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플랜제로는 “이번 대선은 코로나위기, 경제위기, 기후위기를 막을 대통령을 뽑는 선거여야 한다. 대선의 결과를 좌우할 청년들의 표심 역시 여기에 달려있다”며 “그러나 주요 대선 후보들은 아직 2030 세대의 위기의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플랜제로는 이어 “세간의 관심사 역시 후보자나 그 배우자의 사생활 논란으로 점점 치중되어 가며, ‘어떻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비전은 소멸하는 중”이라며 “이러한 위기에 맞서, 우리는 주요 후보들을 상대로 ‘기후위기 원포인트 토론회’를 제안해왔다”고 말했다. 

앞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해 11월 6일 기자회견에서 “누가 ‘기후 대통령’으로서 준비돼 있는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며 기후위기 원포인트 토론을 제안한 바 있다. 플랜제로는 이후 다른 대선 후보에게도 기후위기 원포인트 토론을 제안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그나마 기후위기 토론을 제안하고 참석을 약속한 다른 세 후보도 아직까지 토론회를 실제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영국 채널4 방송이 지난 2019년 11월 주최한 기후위기 토론회에서 각 정당 대표들이 논의하는 모습. 사진=채널4 유튜브 채널 갈무리
영국 채널4 방송이 지난 2019년 11월 주최한 기후위기 토론회에서 지구를 상징하는 얼음 조각상 사이에 각 정당 대표들이 자리한 모습. 조각상에는 토론에 불참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비판하는 뜻으로 '보수당(Conservatives)'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사진=채널4 유튜브 채널 갈무리

상대적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부족한 국내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위기가 선거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영국의 채널4 방송은 총선거를 한 달 앞둔 지난 2019년 11월 기후변화를 주제로 각 정당 대표가 참석하는 생방송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당시 채널4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토론회에 불참하자, 총리에게 배정된 자리에 지구 모양의 녹아내리는 얼음 조각상을 배치하는 초강수를 둬 보수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열린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은 지난 총선보다 5.9%p 높은 14.8%를 득표해 3위를 차지했는데, 기후위기를 핵심의제로 내세운 선거전략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독일 여론조사기관 포어슝스그루페 바렌(Forschungsgruppe Wahlen)이 선거를 9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유권자들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은 것은 코로나(28%)가 아니라 기후위기(47%)였다. 사회적으로 기후위기 해결의 시급성에 대한 공감대가 높은 만큼, 이에 적극 응답하는 정당이 높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도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은 결코 적지 않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지난해 8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1.1%는 “대선에서 기후위기가 중요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대선 후보의 기후위기 공약을 중요하게 고려하겠다”는 응답자도 전체의 88%에 달했다.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이번 대선에서 기후위기가 중요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행정학회·한국정책학회 의뢰로 국정전략연구소·트렌드리서치가 지난해 11월 행정·정책 전문가 100인에게 ‘차기 정부의 핵심과제’를 설문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이 꼽힌 것은 ‘기후변화와 에너지’(58건)였다. 

문제는 기후위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주요 대선 후보들이 이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이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 여부 등 일부 의제에 대해서는 후보마다 차별화된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그 외에는 ‘탄소중립’이라는 표현 이상의 구체적인 공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의 임재민 활동가는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기후위기를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로 꼽고 있다”며 “플랜제로는 추후 대선후보들의 캠프를 찾아 기후위기 토론회 참석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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