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 모의실험 환경 설계방안.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CBDC 개발 경쟁에 한국도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그와 함께 부각될 규제 이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한국은행은 지난 20일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CBDC 모의실험 연구 사업 입찰 결과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X’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한국형 CBDC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계획된 시험을 수행할 ‘그라운드X’는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다. 지난 2019년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Klaytn)’을 개발해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만든 암호화폐 ‘클레이(KLAY)’는 국내 거래소인 빗썸, 코인원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에도 상장돼 있다. 23일 현재 클레이의 시가총액은 약 24억 달러(약 2.8조원, 코인마켓캡 기준)로 토종 코인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라운드X의 오랜 블록체인 플랫폼 운영 경험과 개발 역량이 이번 입찰에서 높게 평가된 것으로 풀이된다. 입찰에 참여한 SK C&C의 경우 블록체인 플랫폼 운영 경험이 없고, 네이버 자회사 라인플러스는 ‘라인 블록체인’을 운영 중이지만 디앱(DApp, 특정 블록체인 기반으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의 다양성에서 클레이튼이 앞선다는 평가다.

또한 카카오의 금융자회사인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와 미국 블록체인 기업 ‘컨센시스’, 삼성SDS 자회사 에스코어, 컨설팅 업체 KPMG, 핀테크 업체 코나아이 등이 협력사로 이번 사업에 참여한다. 클레이튼의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거버넌스 카운슬(Governance Council)에도 카카오뿐만 아니라, 게임개발사 넷마블과 위메이드, 셀트리온, 안랩, 신한은행, LG전자, GS샵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포진해있다.

한은의 모의실험은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면 민간이 유통하는 방식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그라운드X의 다양한 네트워크도 입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모의실험은 가상공간인 클라우드에서 동작하는 CBDC 모의실험 환경을 조성하고 CBDC의 활용성을 점검하는 한편, 관련 IT시스템 전반에 대한 성능 테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계획됐다. 한은은  ①CBDC 모의실험 환경 조성 및 발행·유통·환수 등 기본 기능에 대한 기술적 검토 ②중앙은행 업무 확장, 오프라인 결제, 디지털자산 구매 등의 확장기능 및 개인정보보호 강화기술 등의 적용 가능성 검토 등 두 단계로 나눠 실험을 진행할 방침이다. 1단계 실험은 오는 12월, 2단계 실험은 내년 6월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글로벌 CBDC 경쟁 구도에서 가장 앞선 국가는 중국으로 이미 지난해 말 두 차례나 디지털 위안화의 실사용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은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왔으나, 중국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최근 연이어 CBDC 개발을 선언하고 있는 추세다. 한은의 모의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한국도 글로벌 CBDC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개발한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지난 20일 한국은행의 CBDC 모의실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사진=그라운드X 홈페이지 갈무리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을 개발한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지난 20일 한국은행의 CBDC 모의실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사진=그라운드X 홈페이지 갈무리

◇ CBDC와 역할 겹치는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는?

물론 기술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CBDC를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지급결제방식이 등장함에 따라 생겨나는 새로운 규제 이슈들에 대한 논의도 준비해야 한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CBDC에 관심을 보이면서 부각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바로 ‘스테이블 코인’이다. 법정통화나 귀금속, 원자재 등과 연동돼 비교적 가격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스테이블 코인은 CBDC의 명백한 대체재다. 중앙은행이 CBDC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역할이 겹치는 CBDC를 반드시 견제해야 한다.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려는 이유는 가치변동이 크고 중앙의 통제가 불가능해 자금세탁의 위험이 큰 암호화폐의 단점을 제거하고, 지급결제의 편리성과 금융접근성 개선이라는 장점만 취하기 위해서다. 통화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변동은 적고,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편리하게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해 사실상 CBDC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다. 

만약 스테이블 코인을 통한 거래가 보편화된다면 중앙은행의 통제력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는 1년 만에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에서 618억 달러로 급증했다. 실질적인 결제수단으로서 스테이블 코인의 영향력이 이처럼 확대되는 것을 중앙은행이 좌시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스테이블 코인은 가치변동이 적고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기 편리할 뿐, 중앙은행의 보증을 받는 법정통화보다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당국의 규제에 따라 지급준비금 등을 준비해야 하는 은행과 달리, 스테이블 코인 개발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스테이블 코인 개발사가 발행규모에 준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기구 금융안정위원회(FSB)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위한 권고안. 자료=한국은행
국제기구 금융안정위원회(FSB)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위한 권고안. 자료=한국은행

이 때문에 각국 정부의 CBD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 논의도 심화되는 추세다. 실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실무그룹 회의를 소집해 스테이블 코인 문제를 논의했다. 재무부는 회의 직후 성명을 내고 “옐런 장관은 스테이블 코인 규제 마련을 위해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또한 CBDC 개발에 발맞춰 스테이블 코인 규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은은 지난 4월 발표한 ‘2020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등 민간 디지털 화폐의 경우 전자적 지급수단에 그치지 않고 중앙은행을 우회하는 별도의 지급결제시스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지급결제뿐 아니라 통화정책 및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어 “그러나 한국은행에 부여된 관련 책임과 정책수단은 2003년 한국은행법 개정 이후 큰 변화가 없어 급변하는 지급결제 환경과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다양한 잠재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금융부문의 디지털 혁신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갖추는 등 한국은행의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적 기반을 정비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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