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독일인들이 꼽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 순위.자료=포어슝스그루페 바렌(Forschungsgruppe Wahlen)
독일인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 순위 변화. 녹색선이 '환경과 기후'. 자료=포어슝스그루페 바렌(Forschungsgruppe Wahlen)

[뉴스로드] 올해 들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하며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움직임이 동참하고 있는 독일이 최근에는 탈석탄 시점을 종전 계획보다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 국가로 탄소중립 달성에 상대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독일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원동력에 관심이 쏠린다.

◇ 독일 유권자 47%, "'기후위기'가 가장 시급한 문제"

독일은 지난해 ‘탈석탄법’을 통과시키며 2038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지난 4월에는 기후변화법을 개정해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이라는 기존 목표를 65%로 상향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탈석탄 시점을 현행 법이 규정한 2038년에서 2030년으로 8년 앞당기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독일은 비교적 일찍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지만,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석탄·원자력 발전에 대한 높은 의존도 등 한국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향한 독일의 태도는 한국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며, NDC나 탈석탄 시점 등 국가적 목표 또한 더욱 과감하다. 

독일이 이러한 선택을 내릴 수 있던 배경에는 ‘기후위기’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다룰 수밖에 없는 정치·사회적 환경이 놓여 있다. 실제 지난 9월 26일 실시된 제20대 독일 연방하원의회(Bundestag) 선거에서는 기후위기가 유권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쏟는 의제로 떠올랐다. 

독일 여론조사기관 포어슝스그루페 바렌(Forschungsgruppe Wahlen)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선거를 9일 앞둔 9월 17일 기준 독일 유권자들이 “현재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것은 ‘환경과 기후’였다. 전체 응답자의 47%는 기후위기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았는데 이는 2위 ‘코로나’(28%)보다 19%p나 높은 수치다. 그 뒤는 이민 13%, 사회분열 12%, 연금 10%, 교육 7% 등의 순이었다.

포어슝스그루페 바렌의 조사에서 기후위기가 핵심 의제로 떠오른 것은 최근의 현상이다.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 가장 최근까지 핵심의제였던 것은 불법 이민이었으며, 2014년 이전에는 실업문제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지난 7월 홍수로 150명이 넘은 사상 최악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이는 그대로 선거로 연결됐다.

◇ 녹색당의 선전, '2030 탈석탄' 논의 추진력↑

포어슝스그루페 바렌의 여론조사대로라면 선거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유권자의 절반이 기후위기를 가장 핵심적인 선거 의제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 된다. 실제 이는 선거결과를 통해 명확하게 증명됐다.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25.7%)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중도 우파 연합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24.1%)을 1.6%p의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지만,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지난 총선 대비 5.9%p 높은 14.8%를 득표해 3위를 차지한 녹색당이었다. 

환경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내세운 녹색당의 선전은 결국 이번 선거에서 기후위기가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녹색당이 이번 선거에서 기후보호협약과 원자력 폐지를 헌법에 명시하고 에너지 혁명을 통해 10만개의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다양한 기후 관련 공약을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2030년 탈석탄’이라는 목표도 포함됐다.

사실상 국정 운영의 열쇠를 쥐게 된 녹색당은 사민당·자민당과 연정 협상을 추진하며 다양한 기후공약을 정책에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지난달 15일 공개된 연정 협상 관련 문서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탈석탄 시점을 2030년으로 앞당겨야 하며,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 및 수소 전환이 가능한 가스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국 탈석탄 네트워크 '석탄을 넘어서'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번 독일 총선은 기후변화 대응에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보인 가운데 2030 탈석탄을 주장한 녹색당의 승리로 평가된다"며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2030 탈석탄을 내걸었기 때문에 탈석탄 연도와 관련한 협상이 잘 이루어져야만 차기 연정 협상이 매끄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한국 선거에서 실종된 '기후위기' 의제

반면 한국의 경우 아직까지 ‘기후위기’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다뤄지고 있지 않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해 21대 총선을 앞두고 성인 남녀 1019명에게 ‘21대 총선 유권자 핵심의제’를 조사한 결과, ‘서민살림살이의 질 향상’(15.7%)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그 뒤는 ‘집값 안정 및 서민주거비 부담 완화’(13.8%), ‘청년 실업 및 주거대책 마련’(13.2%), ‘세대 계층 등 사회갈등 완화’(11.8%), ‘질 좋은 일자리 창출’(11.2%), ‘고령화 사회 대책 마련’(9.1%) 등의 순이었으며,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 대응’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8.2%에 불과했다.

최근의 상황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유력한 대선주자들 중 누구도 기후위기 대응을 핵심의제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 일부 후보들이 탄소중립을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대부분 ‘녹색’ 성장이 아닌 녹색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참여연대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열고 6대 분야 31개의 21대 대선 개혁의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기후위기 대응과 (탈탄소 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도 포함됐다. 이번 대선에서 기후위기가 핵심 의제로 떠올라 2050년으로 잠정 결정된 탈석탄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뉴스로드 임해원 기자 theredpil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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