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가 있다. 사람을 가둘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올라가고 있는 건물을 멈춰 세울 수도 있고, 서 있는 건물을 허물 수도 있다. 사람 목숨과 햇빛에 가격을 매길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을 떼 놓을 수도 있고, 만나는 날과 횟수를 정해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간통이라 했다가 마음이 바뀌면 사랑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성폭력이라 질타했다가 어떤 경우는 괜찮다고 허용하기도 한다. 일할 수 있는 나이를 정해주고, 이부자리를 들추고, 양심을 손보기도 한다. 영생을 부여하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말고는 못하는 게 없다
지난 2016년 여름 대한민국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가수이자 화가인 조영남이 조수를 시켜 작품을 대작하고, 이를 알리지 않은 채 판매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언론은 연일 조영남의 비윤리적 행태를 보도하는데 열을 올렸고, 화가들은 신성한 예술혼이 짓밟혔다며 분노했다. 대부분의 대중들 역시 조영남의 사기행각에 분통을 터뜨렸으니, 여론에 힘입어 검찰이 그를 기소하기까지 이르렀다. 흑과 백의 구분이 너무나 명징해보이던 이때, 유일하게 ‘그만’을 외친 사람이 있었다. 미학자 진중권은 현대미술의 규칙을 왜 검찰이 제정하
세계화란 무엇인가? 세계화는 왜 시작되었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고,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얻고 싶다면 리처드 볼드윈의 『그레이트 컨버전스』가 안성맞춤이다. 볼드윈은 세 가지 제약조건, 즉 상품·지식·사람의 운반비용으로 세계화를 설명한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동안 이 세 가지를 움직이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무역이라는 형태로 상품이 이동하긴 했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여러 차례 중개인을 거친 끝에야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람의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아베 신조라는 인물에 호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외려 그에 대한 감정은 극렬한 반감에 가까워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베가 하루빨리 퇴장하기만을 소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걸핏하면 망언을 일삼는 극우적 사고. 강자에게 굽실대고 약자에게 큰소리치리는 파렴치한 외교.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각종 스캔들. 한국 언론에 따르면 연일 위기를 맞아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얼마 전 아베는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갈아치웠다. 『아베는 누구인가』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한 국가에 대해 공부할 때, 우리는 보통 그 역사와 문화를 먼저 들여다본다. 어떤 법과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지 살피고, 소득수준과 교육수준도 따져 본다. 그러고 나서 현재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려 애쓴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시대적 사명을 지니고 있으며,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공간 안에서 운신한다. 인물의 자잘한 특성보다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독재국가의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도자의 혈통이 신성시되고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절대적 권위가 부여된다면, 바
리콴유를 바라보는 후대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맨땅에서 나라를 일으킨 국부, 혹은 자유를 탄압하는 냉혹한 독재자. 그러나 이런 상반된 평가를 내놓는 이들도 한 가지 사실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리콴유가 없었다면 지금의 싱가포르는 없었다는 것. 식수도 구하기 어렵던 조그만 도시국가가 화려한 금융의 중심지로 변모하기까지, 산전수전을 두루 겪은 이 노회한 정치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세계 각국의 미래를 예견하는 책을 한 권 펴냈다. 흥미로운 대목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우선 네 국가를 간략하게 짚어보도록 하자.
윈스턴 처칠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은 누가 뭐래도 1940~1941년이다. 이 65세의 영국인이 역사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그가 없었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졌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처칠이 없었다면 영국은 결사항전의 결기를 버리고 독일과 정전협정을 맺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히틀러가 배후에 평화를 확보한 채 러시아를 굴복시켰을 공산이 크다. 또한 처칠이 아니었다면 미국 역시 독일과의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쯤 대서양에서 우랄 산맥에 이르는 거대 게르만 국가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삶이 고단하고 마음이 어수선할 때, 보노보노와 곰돌이 푸를 읽어도 좀처럼 위로를 얻지 못하는 나는 종종 철학자들의 인생을 뒤적여 본다. 견고한 사상만큼이나 난공불락일 것만 같은 삶. 그러나 실은 결함투성이였던 삶. 그 결핍을 친구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갔던 삶. 그들의 일생은 모험이자 좌절이었고, 불안이며 고독이었다.이 책에는 총 6명의 철학자가 차례로 등장한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까지. 모두 시대의 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때로 파도에 휩쓸려 넘어지기도, 한계에
[뉴스로드] 일찍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를 가리켜 ‘심산유곡에 핀 한 떨기의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라 말했다. 비록 세상은 흙탕물로 가득하지만, 거기서도 정치는 꽃망울을 틔워낸다는 것이다. 언제나 정치인을 욕해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고, 무슨 일이 생기면 광화문광장부터 찾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시의적절한 문장이다. 그렇다면 정치는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원시 공산사회에서 평등하게 지내다가 생산수단이 탄생하면서부터 빈부격차와 권위주의적 지배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긴박하게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외교 관련 책들을 손에 잡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외교부 조세영 차관이 민간인 시절 펴낸 『외교외전』을 재미있게 읽었다.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에는 외교관의 이사부터 복장, 의전, 조직 내 알력관계,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리걸 마인드(legal mind)에 대한 꼭지였다. 1961년 5월,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고 장면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총사퇴하자, 윤보선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하겠다는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