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분양제, 분양원가 공개, 토지임대부 백년주택 실현해...정부와 다른 공기업에 확산 돼야"
- "매입임대에 집중하는 주택 정책은 안 돼...정부, 시장 정상화 의지 부족"
- "금융권도 부동산 투기 조장...비소구 대출 늘려야"
김헌동 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은 임기 3년 내내 부동산 시장 개혁을 강력히 주장하며 공공주택 공급 확대, 분양 원가 공개, 후분양제 도입 등 10가지가 넘는 혁신적인 부동산 정책을 실시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11월 3년 동안의 임기를 마친 김헌동 전 사장은 설날을 맞아 뉴스로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부동산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에 대해 심도 깊은 견해를 밝혔다.
"부동산 투기 구조, 근본부터 바꿔야"
김 전 사장은 "지난 20년간 시민운동을 통해 부동산 개혁을 외쳤고, 직접 정책에 참여해 변화를 만들어왔다"며 "그동안 주택 시장은 투기 세력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로 고착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으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이 근로소득보다 더 큰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군사정권과 김대중정부까지는 정부가 공급자와 소비자가 함께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였지만 노무현정부 이후에는 부동산 개발 이익이 건설업자와 금융업자에게만 집중되고 있다"며 "이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은 "SH 사장으로 재직하며 후분양제, 분양원가 공개, 1억원만 있으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토지임대부 백년주택 정책을 실현했고, 이를 통해 부동산 투기의 고리를 끊으려 했다"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정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은 분양 원가 공개를 꺼리고 있으며,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권도 부동산 투기 조장...비소구 대출 늘려야"
그는 금융권의 책임도 언급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면서도, 정작 부실 위험은 개인이 떠안는 구조"라면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비소구 대출을 통해 금융권이 일정 부분 책임을 지지만, 한국에서는 개인이 끝까지 빚을 떠안아야 한다"며 현행 대출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전 사장은 "정부는 시장을 정상화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수도권에서 1억 원만 있어도 집을 살 수 있는 모델을 SH에서 실현했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4억~5억 원짜리 빌라를 무제한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다음은 김헌동 전 사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이슈가 나오고 있는데요. 특히 집값 안정과 주택 정책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연구하고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하셨는데,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가장 큰 문제는 ‘불로소득’이 여전히 구조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입니다. 서민들이 땀 흘려 번 돈보다 부동산으로 얻는 차익이 훨씬 크다면, 과연 누가 열심히 일하고 사업을 하겠습니까? 결국,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구조가 지속되면 근로 의욕이 꺾이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됩니다.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 도입이 필수적입니다.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에 대해 강조해 오셨는데, 이 두 가지 정책이 집값 안정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나요?
△원가 공개는 공공기관이 주택을 공급할 때 그 원가를 투명하게 밝히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한 채를 짓는 데 3억 원이 들었는데, 이를 10억 원에 분양한다고 하면 그 차익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결국, 건설사와 시행사, 금융업자들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불필요한 이윤이 개입될 여지가 줄어들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후분양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선분양제에서는 집이 완공되기도 전에 높은 분양가로 판매되며, 주택 구매자들은 건설사와 시행사의 말만 믿고 집을 삽니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실제로 지어진 집을 보고 품질을 확인한 후 구매할 수 있으므로, 품질이 낮거나 과도한 분양가 책정이 어려워지겠죠. 이는 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후분양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헌동: 후분양제가 도입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건설사와 금융권의 반대 때문입니다. 현재 선분양제에서는 건설사들이 소비자들로부터 미리 자금을 확보해 공사를 진행하고, 은행들은 대출을 통해 안정적으로 이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분양제로 바뀌면 건설사들은 자체 자금이나 금융권 대출을 받아야 하며, 이는 리스크를 증가시킵니다. 결국, 건설사와 금융권이 막대한 이익을 누려온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후분양제가 쉽게 도입되지 못하는 것이죠.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현 정부의 정책도 여전히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보다는 부동산 시장을 띄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봅니다.
특히, 서울에서 4억~5억원 짜리 빌라를 무제한 매입하는 정책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이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높은 가격을 유지한 채 시장 개입을 하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이런 정책이 아니라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 도입 같은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부동산 시장이 투기장이 아닌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개혁이 필요합니다.
공공이 주도해 저렴한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고,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시장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가 완공된 후 분양하는 제도를 정착시켜 소비자들이 직접 품질을 확인한 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주택 품질을 높이고, 분양가 거품을 없앨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집값이 하락해도 대출을 받은 개인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처럼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집값이 하락하면 담보를 은행에 넘기면 채무가 소멸되는 ‘비소구 대출’을 도입하면, 금융권의 부실 대출 리스크를 줄이고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강요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주택은 ‘사는 곳’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집값이 안정되고, 청년들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가 공개와 후분양제 같은 정책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정책'이 아닌 '정치'의 시간이지만, '올바른 정책' 없이는 부동산 개혁도 어렵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고, 올바른 정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더 큰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김헌동은 쌍용건설에서 20여년 근무하면서 현장과 감리, 기획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공사에서 중책을 맡기도 했다. 이후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20여년 동안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본부장,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 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부동산 개혁을 주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지난 3년 동안 SH공사를 통해 다양한 부동산 개혁 정책을 실시해 많은 성과를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