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개 단체, 산업부 상대 소송 제기..."세계적인 탄소중립 추세에 안 맞고, 국내 산업 위기에 빠뜨려"
- 김경식 대표 "SMP 등 불합리한 제도 개선하고, 전력소매시장에 민간자본 참여 활성화해야"

일부 기후·환경 시민단체와 재생에너지사업자들은 그 동안 논란이 많았던 정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전면 취소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1월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이창양)가 이번 계획을 발표할 당시부터 탈석탄과 탈화석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맞지 않고, 이로 인해 국내산업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반발해왔다. 

이에 대해 에너지정책 전문가는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축소한 정부의 계획에는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면서도 최근 화석연료의 가격이 오르면서 재생에너지가 경쟁력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활성화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민간의 자본이 투자될 수 있는 환경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며 한전의 전력소매시장 독점을 해소하는 방안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솔루션 관계자는 20일 <뉴스로드>와의 통화에서 "24개 시민사회단체와 청년,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을 대표한  9인의 공동 원고인단은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상대로 제10차 전기본 취소 소송에 관한 소장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 회견문을 통해 "재생에너지 목표를 축소하고 탄소중립 달성과 기후위기 대응 누락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전면 취소하라"면서 "10차 전기본은 실현 가능성이란 모호한 핑계로 우리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 에너지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에너지정책 전문가는 보다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을 위해서는 한전의 전력망과 유통을 모두 독점하는 구조를 해소해 민간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겸 고철연구소 소장 [사진=고철연구소]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겸 고철연구소 소장 [사진=고철연구소]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겸 고철연구소장은 이날 <뉴스로드>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춰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정량적 목표만 제시해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김경식 대표는 "지난 정부에서 탈석탄·탈화석을 화두로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도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가 연평균 3.5GW(기가와트) 증가에 그쳤다. 오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21.6%까지 높이려면 연평균 5.3GW 이상의 설비를 늘려야 한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소매전력 시장을 개방해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0차 전기본에 담긴 전원별 발전량 비중의 향후 전망 [자료=산업부]
10차 전기본에 담긴 전원별 발전량 비중의 향후 전망 [자료=산업부]

김경식 대표는 "최근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가격이 급등해 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이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SMP(계통한계가격)제도 등으로 인해 한국전력공사가 막대한 손실을 보고있다. 그럼에도 사실상 한전이 소매시장까지 독점함으로써 민간자본 유입을 원천 차단한 구조가 문제"라며 "정부가 생산과 유통을 모두 독점하는 현재의 구조를 전제로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존 전기본과 이번 전기본의 차이점 [자료=산업부 10 전기본 내용 중 일부]
기존 전기본과 이번 전기본의 차이점 [자료=산업부 10 전기본 내용 중 일부]

한편 이날 원고인단에 따르면, 10차 전기본이 2030년 석탄 및 가스 등 화력 발전 비중의 목표를 43%로 잡으면서 9차 전기본에서는 24기였던 가스발전소 전환계획이 28기로 더 늘었다.

올해 초 산업부가 발표한 10차 전기본에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의무공급비율(RPS)을 2026년 기준 25%에서 15%로 낮추고, 재생에너지 공급 초과로 강제 출력 제한을 당하고 있는 제주도에 600(메가와트)MW 규모의 대형 신규 가스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한다는 계획 등이 담겼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全文)

- 재생에너지 목표 축소하고 탄소중립 달성과 기후위기 대응 누락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전면 취소하라

한국의 탄소중립 방향성을 담은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오랜 진통 끝에 곧 발표된다. 그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1월 12일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10차 전기본’)에서부터 시작됐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국제사회에 약속한 목표였던 2030년까지 기존 30.2%에서 21.6%로 대폭 축소한 탓이다. 

우리는 재생에너지 목표를 축소하여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시민들의 삶과 미래세대에 대한 고려를 저버리고 편협하게 수립된 10차 전기본의 전면 취소를 요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10차 전기본은 ‘실현 가능성’이란 모호한 핑계로 우리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 에너지 계획이다.

전기본은 15년 간의 국가 전력 수급방식을 제시하는 주요 행정계획이다. 본 계획에 따라 우리 경제와 시민의 삶이 어떤 에너지원으로 지탱될지 결정된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력발전 퇴출이 시급한 지금 10차 전기본에는 오히려 새로운 화석연료 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는 줄었다. 이로써 미래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약속인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여부조차 불투명해졌다. 10차 전기본은 결국 에너지 전환의 원동력인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 신규 화력발전소가 건설될 지역 주민들,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포기한 에너지 계획 아래 살아야 할 청년들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협에 빠뜨렸다. 

따라서 우리는 10차 전기본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9인의 공동 원고인단과 전국 24개 시민사회단체 및 청년단체와 함께 연대해 10차 전기본의 전면 취소를 촉구하는 바이다.

재생에너지는 이미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시장에서 불공정한 싸움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본 계획으로 재생에너지 생태계는 더욱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들었다. 정부는 “실현가능성”을 핑계 삼아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따라 30.2%였던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21.6%로 하향했다. 이렇게 낮아진 목표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비율(RPS) 또한 2026년 기준 25%에서 15%로 줄어들었다. 손바닥 뒤집는 식의 에너지 계획에 따라 에너지 시장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정책 신호는 결국 재생에너지 산업의 예측 불가능성을 심화했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정책 변화로 전국 각지의 현장에서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해온 소규모 발전사업자는 생존 문제로 기로에 서게 됐다.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제주도도 10차 전기본으로부터 미래를 위협받고 있다. 이미 대형 화력발전기 중심으로 전력계통이 운영되면서 제주도의 풍력발전기들은 강제로 출력을 제한당하고 있다.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제주의 슬로건이 무색해진다. 10차 전기본대로라면 2030년 전체 발전량 중 20%에 이르는 재생에너지가 출력제한으로 버려질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출력제한 문제가 더 악화된다는 것이다. 600MW 규모의 대형 신규 가스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이 10차 전기본에 포함되어 있다.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대형 가스발전소의 추가 건설 계획은 지역 주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며, 기후위기 가속에 일조할 뿐이다. 10차 전기본은 제주도민의 건강과 행복을 저해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로막아 ‘탄소 없는 섬’이라는 제주도의 꿈을 앗아간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청년 혹은 갓 청소년이 된 차기 사회의 주역이 될 미래세대라면 10차 전기본의 계획 기간에 사회초년생이 된다. 하지만 지금의 10차 전기본을 수립한 전문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이들에게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오랫동안 누적된 책임을 한꺼번에 떠넘기고 있다. 에너지 계획에 어떠한 발언권이 없는 미래세대는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낮아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와 부실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으로 얼룩진 지금 계획대로라면 우리의 기후위기 대응은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 10차 전기본은 곧 발표될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려한 계획이 없다면 2030년은 물론 2036년과 2050년을 살아가야 하는 미래세대들에게 우리가 남겨줄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중립은 오리무중으로, 산업경쟁력은 늪에 빠뜨릴 10차 전기본

정부는 지속해서 2030년 NDC 상향안에 따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인 30.2%을 “실현가능성이 낮고 과다한 목표”라고 일축하며 에너지 전환에 브레이크를 밟아 왔다. 결국 10차 전기본으로 재생에너지 목표를 줄였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지속하겠다는 전망을 담았다. 

폐지되는 노후 석탄발전소는 ’동일용량, 동시대체의 원칙‘하에 또 다른 화석연료인 가스(LNG)발전소로 대체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 9차 전기본에서 24기의 석탄발전소에 대거 반영되었던 가스발전소 전환계획이 28기로 늘어나며, 신규 가스발전 설비용량을 2036년까지 총 64.6GW로 대폭 확충한다.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미미하고 값비싼 수소와 암모니아를 ‘무탄소 전원’이라 내세워 화석연료와 혼소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본 계획은 사실상 좌초될 석탄과 가스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고 기후위기 대응에 고삐를 당기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본 계획이 무시한 시대적 요구는 기후위기 뿐이 아니다.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 세일즈맨을 자처하면서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국내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는 외면하고 있다. 21.6%라는 재생에너지 목표는 2030년 기준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거듭해서 나오고 있다. 이는 10차 전기본이 많은 기업들이 이미 해외 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고 있는 현실과 이러한 국제적 압박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100% 달성 시점을 더 앞당겨야 할 가능성을 누락했다. 낮은 재생에너지 목표는 탄소국경제도와 같은 국제사회의 탄소배출 감축 요구 등 주요 외부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진 계획임을 방증한다.

- 이미 정해져 있던 결말, 유명무실했던 검증 절차

10차 전기본을 수립하는 과정은 시작부터 불투명했다. 이미 정해져 있는 정부의 결론에 맞추어 유명무실한 검증 절차를 통해 졸속으로 확정되었다. 

본 계획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구성된 전력정책심의회 산하의 총괄분과위원회가 작성한다.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력정책심의회는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공급 에너지원을 구성한다. 하지만 해당 위원들은 지난 수 년 간 산업부, 한전, 한전 발전자회사, 가스공사 등 전력산업의 핵심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수십 억원 상당의 연구용역을 수행해왔다. 과연 이들이 용역 발주처로부터 철저히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국가의 앞날을 책임질 에너지 계획을 작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 시민사회와 국회,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전기본을 포함한 국가 에너지 정책 수립에 관여하는 전문가들의 독립성, 공정성, 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런 “전문가”들이 밀실논의로 작성한 전기본을 우리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야 한다.

또한 본 계획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는 계획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탄소중립 기본계획 등 국가 상위 계획과의 정합성 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환경부와 국책연구기관의 지적이 있었다. 학계, 산업계, 시민사회는 물론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국회까지 본 계획의 재검토와 수정을 요청했으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실무안 대비 확정 계획에서 단 0.1%만 늘어났다. 획기적으로 개선된 내용은 없었으며,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한 근거도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법률이 요구하는 공청회와 전력정책심의회 등 주요 검증 절차는 이미 정해진 정부의 결론을 강행하기 위한 끼워 맞추기식 요식행위로 진행되었다. 공청회에서는 시민들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은 부재한 채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이어졌다. 이후 이어진 국회 상임위원회 보고 또한 단순 보고에 그쳐 수정 및 보완되지 못했으며, 이후 전력정책심의회조차 지속해서 그 공정성과 독립성을 상실했다는 지적 속에 전기본에 대한 마지막 검증 기구로서 기능하지 않았다.

- 전력수급기본계획이라는 구시대적 유물에서 벗어나야 할 때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30 NDC 상향안대로 온실가스를 감축하더라도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국제사회가 약속한 1.5도 상승 저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탄소예산은 7년에 안에 다 소진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화력발전 중심적인 구시대적 패러다임에 갇힌 전기본이라는 일방통행식 중앙집권적 에너지 기본계획에서 벗어나야 한다. 분권화된 재생에너지 시대에 걸맞은 에너지 시스템 마련을 통해 발빠르게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고 시민과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축소 및 화력발전 수명연장으로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의 책임을 미래세대에게 전가하고, 불투명한 과정에서 유명무실한 검증 절차를 거쳐 졸속으로 확정된 10차 전기본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전면 취소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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