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은 "올해 안에 매각해야"...해진공 "매각은 하지만 급할 것은 없어"
- 금융위, CB전환 부정적...신보기금 손해봐도 나서기는 싫어?
- 기재부, 사실상 모든 이해관계의 중심...국민연금 손해도 살펴야

정부, HMM 매각 TF팀 구성해야...산은·해진공·금융위 입장 각자 달라

한국산업은행(회장 강석훈)과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김양수)가 지난 20일 HMM(대표이사 김경배) 경영권 공동매각을 위한 공고를 내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HMM은 지난해 국내 기업 중 최대 영업이익(9조9516억원)과 순이익(10조854억원)을 올린 세계 8위(선복량 기준)의 해운사지만, 매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2조6800억원 규모의 영구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다.

HMM 지분의 민간 매각에는 이견이 없지만, 관련 기관들의 입장은 크게 달라서 기획재정부(장관 추경호부총리)와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 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 HMM 등이 함께 참여하는 매각팀을 구성해야 한다. 

정부 기관별 HMM주식 보유수량과 주식평가액 비교 [자료=뉴스로드]
정부 기관별 HMM주식 보유수량과 주식평가액 비교 [자료=뉴스로드]

정부는 당초 HMM 지원을 목적으로 영구채를 발행했지만, HMM이 코로나19 특수로 2020년 약 1조원, 2021년 약 7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주가가 주당 5만원을 돌파하자, 이동걸 전 산은회장은 "이익의 기회가 있는데, 이를 포기하면 배임"이라며 3000억원의 2021년 만기가 돌아온 3000억원 규모의 CB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물론, 이는 영구채와 달리 전환사채로 공시가 됐었던 내용이다. 하지만, 그해 10월 해양진흥공사가 스텝업 조항이 적용돼 HMM이 조기상환을 요청한 6000억원 규모의 영구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HMM의 주가는 폭락했고, 산은을 비롯해 신용보증기금과 국민연금공단은 큰 손실을 보게됐다. 

25일 종가를 기준으로 2021년 6월말 공시됐던 시총(약 20조원)과 비교하면, 약 60%가 증발했고, 정부는 이미 1조57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산은은 오는 10월 1조원의 채권 회수를 포기하고 또 다시 주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이다. 적어도 산은의 입장에서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HMM 매각 TF팀을 구성해야하는 이유다. 

만일, 산은의 '배임론'이 수용되고, 오는 10월 또 다시 1조원의 채권 회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남아있는 1조6800억원 규모의 CB와 BW도 같은 논리로 주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지분이 과도한 상황(약 58%(연기금 제외)~64%(연기금 포함))에서 이들 주식을 전환하면 보유주식에 대한 주가 희석으로 인해 실익이 없고, 더 나아가 채권을 포기하는 만큼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물론, 현재 주가가 이를 이미 반영해 주식전환에 따른 추가하락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조기상환이 이뤄지면 주가가 반등할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하는 셈이어서 주식전환에 따른 손실로 해석되기는 마찬가지다.

산은과 해진공은 신주 발행을 통한 이익을 취할 수 있고, 이른 바 '배임론'으로 이를 정당화하고 있지만, 이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사업자가 아니라,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비영리 기타공공기관이다. 

하지만 산은과 해진공 수장이 반드시 국민연금이나 신보기금의 손실을 염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영구채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배임론'을 앞세워 산은과 해진공은 채권 회수를 포기하고 주식으로 전환할 것이고, 신보기금과 국민연금, 그리고 일반투자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갈 수 밖에 없다. 

HMM에 투자한 국민연금과 신용보증기금도 손실을 최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의 자산이다. 

신용보증기금은 금융위원회가 주무부서로 돼있고, 국민연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장관(위원장)을 비롯해 기획재정부차관 등 5명의 정부 차관이 당연직위원을 맡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피해를 최소화하고 정책금융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매각을 위한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해야 한다. 

게다가 정부는 일반투자자들을 보호해야하는 의무도 지녔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의무공개매수제도(상장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할 정도의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일반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주식의 일정 비율 이상을 공개매수로 취득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약속한 바 있다. 

누구에게 HMM을 얼마나 많이 받고 파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절차와 과정을 통해 HMM의 새주인을 찾느냐다. 

이는 다음에 유사한 사례가 또 생겼을 때 매우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없고 각 기관의 각기 다른 입장으로 중구난방식의 행정이 이뤄지면 국가의 기강이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국민이 어떻게 정부를 믿고 국내 자본시장에 투자를 할 수 있겠냐는 얘기다. 

발등에 불 떨어진 산은...급할 것 없는 해수부와 해진공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11월 "BIS비율(국제결제은행 지급준비율) 13%를 지키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한국전력공사와 HMM의 주가 하락이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산은이 BIS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HMM의 주가를 올리던지,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평가 차익을 보든지 연말까지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지난달 해운사 사장단 연찬회에서 만난 김양수 사장(오른쪽)과 김경배 HMM 대표이사(왼쪽) [사진=뉴스로드]
지난달 해운사 사장단 연찬회에서 만난 김양수 사장(오른쪽)과 김경배 HMM 대표이사(왼쪽) [사진=뉴스로드]

20.69%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 산은에 이어 19.96%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해양진흥공사는 입장이 다르다. 

지난 2018년 새롭게 설립된 해진공은 해양수산부(장관 조승환)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 

해수부와 해진공은 겉으로는 '민영화'를 표방하면서도, 급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줄곧 피력해왔다. 

해진공의 초대 사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중·고등학교 동창인 황호선 부경대 명예교수였고, 해운재건을 주도했던 김영춘 전 해수부장관은 국회사무총장까지 지낸 더불어민주당 3선의원 출신이다. 

'해운재건 5개년' 사업이 문재인정부 최대 치적이라는 배경에는 이같은 정치적 바탕이 깔려있다. 

더구나, 해운재건을 주도한 '호양회(虎洋會, 고려대+해양)'는 해수부와 해운업계의 최강 인맥으로 간주된다. 

해운재건을 시작한 김영춘 장관, 유창근 전 HMM 대표이사는 물론이고,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실행했던 배재훈 HMM 대표이사, 박준영 전 해수부차관, 엄기두 전 해수부차관 등을 포함해 조승환 장관과 김양수 사장이 모두 호양회 핵심 인물들이다.

최근 박준영 전 차관이 호양회를 중심으로 한 해수부의 이권카르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위동항운유한공사 대표에 지난 5월 취임함으로써 호양회의 위세는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위동항운은 중국에 본사를 둔 한중합작회사로 5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으며, 위동항운 대표는 한중카페리협회 회장직을 겸하는데, 창립 당시부터 33년째 호양회가 대표 자리를 독점해오고 있다. 

최근, 박성훈 전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이 '이권카르텔을 해체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해수부차관으로 가기는 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은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급한 산은이 CB전환이라는 카드를 거낸 것으로 보인다.

오늘 10월 스텝업조항이 적용되는 4000억원 규모의 CB와 6000억원 규모의 BW에 대해 HMM이 오는 9월 조기상환을 요청하게 된다면 이를 주식으로 전환해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현재 매각대상 주식수를 살펴보면 산은은 3억주 이상을 매각할 수 있고, 해진공은 약 1억주를 팔 수 있어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렇게 되면 해진공은 불만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지난 21일 매각공고에는 잔여 채권을 모두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가정하에 잠재주식수량으로 표기했지만, 정부의 지분이 이미 과도한 상태에서 나머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정부가 큰 손해가 나는 만큼 주식전환 여부는 상당히 불안해졌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 관계자에 따르면, 산은이 매각 공고 전에 금융위에 이같은 계획을 밝혔다. 금융위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산은 측이 매각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금융위가 한발 물러선 정황이다.

따라서 다음달 21일까지 적당한 매수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산은은 입장을 번복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이 경우라도 산은은 '배임론'에서는 확실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CB 악용을 통한 불공정거래 방지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
지난 21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CB 악용을 통한 불공정거래 방지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

금융위·기재부, 신보기금·국민연금 손실 방치가 진짜 배임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20일 '전환사채 시장 공정성·투명성 제고 세미나'에서 "전환사채를 악용한 불공정 거래를 차단해 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이로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는 앞서 지난 2021년 10월 27일 CB전환으로 기존 지분가치가 지나치게 희석되고 전환가액이 낮으면 CB보유자에게 유리해 불공정한 거래수단이 될 수 있어 "불건전하다"며  ‘증권시장 불법·불건전행위 근절 종합대책’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전환사채 관련 법규를 개정한 바 있다. 

이번에 산은이 매각공고문에 밝힌 1조원 규모의 CB전환은 정확히 여기에 부합하는 '불공정한 거래수단'이다. 

금융위는 당시 법률 개정을 통해 'CB가 최대주주의 편법적 지분확대에  이용되거나, 각종 불공정거래에 악용되는 사례가 억제되고,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 보호가 강화되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금융위가 법률을 개정하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존 HMM 주주의 지분가치는 전혀 보호되고 있지 않다. 더구나 금융위가 주무부처인 신보기금이 최대 피해자다. 

신보기금은 지난 2021년 6월말 기준 6.05%의 지분(약 2453만주, 약 1조2412억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유 주식 변동 없이 산은과 해진공의 신주발행에 따른 주가 희석으로 25일 까지 7911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신보기금의 주무부서는 금융위다. 그리고, 금융위 구성원 중 첫번째 자리는 기재부차관이다. 

금융위는 산은과 해진공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고, 기재부는 산은과 해진공의 최대주주다. 

만일 산은이 '이익을 볼 기회를 포기하면 배임'이라는 논리로 CB를 전환한다면, 정작 배임을 일삼고 있는 기관은 기재부와 금융위인 셈이다. 

같은 시점에서 2130만주를 보유했던 국민연금도 6869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서둘러 범부처 성격의 HMM매각팀을 구성해 각기 다른 기관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정부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조건으로 HMM을 매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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