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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프랑스에는 국왕의 손길이 환자에게 닿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특히 ‘림프 결핵’에 특효가 있다고 해서 이 병을 ‘왕의 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치료방법은 환자들에게 강한 믿음을 부여하면서 효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국왕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위엄과 백성에 대한 사랑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믿음치료’는 말 그대로 믿음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환자의 병이 낫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단정했다. 국왕에게 실패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찰리 2세(1660~1685재위)는 퇴위할 때까지 매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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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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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기계인가? 사람이 기계인가? 이는 17세기 유럽을 뜨겁게 달구었던 의학계의 논제였다.유럽학계는 물리학파와 화학파로 나뉘어 논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당시의 논제들은 수세기 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학계의 풀리지 않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간단한 문제가 어쩌면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지도 모른다.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 천재적인 과학자들이 배출되었던 17세기에는 물리학의 뼈대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기계역학은 단지 과학의 한 영역에 그치지 않고 학계 전반의 새로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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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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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시 중심엔 한 줄기 갈색 연기 같이 기이한 모양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의 인물상들이 그 기둥을 둘러싸고 있고 기둥 아래에는 왕이 왕관을 손에 들고 꿇어 앉아 있다. 이 기둥이 바로 페스트 기념비(Pestaule)이다. 17세기, 전 유럽을 휩쓴 페스트로 수많은 도시가 텅 빈 폐허로 변했으며 권력도 부도 죽음의 문턱에 선 병자들을 살릴 수 없었다. 전례 없는 무서운 재앙은 유럽 인구 절반의 목숨을 앗아갔다. 권력의 상징이었던 왕마저도 죽음으로 내몰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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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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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연구와 실제 응용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영국의 런던 왕립학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획기적인 발견도 프랑스로 넘어가면 미미한 영향에 그치고 만다. 각종 학회에 소속된 학자들은 새로운 의학의 발전 방향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환자들에게 주는 처방전은 여전히 관장, 사혈요법, 설사 등 수세기 전부터 전해내려 오던 고리타분한 방식에 불과했다. 물론 지금처럼 부작용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없었다. 17세기에는 두 가지 신약이 등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안티몬과 키니네였다.안티몬(Antimony: Sb,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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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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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해부학은 인체의 정확한 구조와 기본적인 장기의 형태도 파악하게 됨으로써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시체를 해부하다 보면 어딘가 어색한 구조와 병변을 일으킨 부위를 종종 발견하게 되곤 했다. 이 때문에 이러한 변이 구조와 질병의 관계를 밝히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했다. 바로 병리해부학이다.처음에는 병변을 일으킨 장기를 육안으로 관찰하는 데 그쳤지만 점차 병변의 원인 찾기에 역점을 기울이게 되었다. 병변의 원인을 환자에게 설명함으로써 환자의 신뢰를 얻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1651년 테르트르라는 의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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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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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유명한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9)는 대자연의 소박함, 일관성, 그리고 나름대로의 역할이 주어진 모든 생명체를 찬미했다. 이 말은 17세기의 과학적 이념을 잘 대변해 준다. 이 시기에는 케플러를 비롯해 갈릴레이, 데카르트, 뉴턴 등 천재적인 학자들이 배출되어 과학의 신기원을 열어주었으며, 의학 역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했다.바빌론, 이집트, 인도, 중국, 이스라엘, 그리스, 로마의 의학은 주변 여러 나라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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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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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은 생명을 상징한다. 외과수술에 있어 수혈은 가장 기본적인 조치에 해당한다. 만약 어느 나라에서 대규모로 혈액을 비축하기 시작하면 바로 전쟁이 일어날 신호로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혈액으로 목욕하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고대 로마시대의 격투사들은 결투에서 패해 죽기 직전의 상태에 놓인 사람의 피로 체력을 보충했다고 한다.1628년 하비는 혈액이 허파에서 정맥을 통해 동맥으로 이동한다는 혈액순환이론을 발표했다. 런던왕립학회에서 먼저 이 학설을 옹호하고 나섰으며 학회의 회원들은 객관적인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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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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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베투스(Servetus, 1511~1553)는 인체해부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베살리우스의 벗이자 제자였다. 그는 베살리우스보다 세 살 위였다. 1511년 스페인 북부 나바라에서 출생했으며 스페인에서 보통교육을 받은 후에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프랑스로 떠났다. 처음에는 리옹의 한 인쇄소에서 교열 일을 하다가 파리로 옮겨와 점성학을 공부했다. 후에 파리 대학 의학과에 입학해 베살리우스와 같은 실험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 회복》에는 혈액이 심장에서 흘러나와 허파를 지나 온몸을 순환한 후 좌심실로 돌아온다는 내용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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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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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조각가 헨드리크 골치우스(Hendrick Goltzius)는 병세에 따라 의사에 대한 태도가 바뀌는 환자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풍자한 적이 있었다. 병이 위중할 때 의사는 그들에게 희망이요 천사이지만, 건강을 되찾은 후엔 막대한 의료비를 청구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시대는 의사들에게 극도로 혼란을 준 시대였다. 그들은 소변검사 용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고 4대 원소설에 입각해 시도 때도 없이 팔뚝에 사혈요법을 실시해야 했으며 페스트에서 비듬까지 온갖 질병을 치료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외과의사들은 외상과 골절을 치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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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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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복원 수술은 고대 인도에서 처음 등장했다. 고대 인도의 법률에는 죄수, 전쟁포로의 귀와 코를 자르는 규정이 있었다. 이에 2세기 의학 관련 문헌에 벌써 코 복원 수술을 실시한 한 외과의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얼굴이 망가진 환자의 뺨과 이마에서 코 크기만큼 피부를 떼어 원래 코 부위에 꿰맨 후 붕대로 감아 두 피부를 봉합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코가 다시 생기긴 했지만 마치 흉측한 살덩어리를 붙여 놓은 것처럼 너무나 보기 흉했다.15세기 나폴리의 한 시인이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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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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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학자 플리니우스는 당시 로마의 네로 왕이 안경을 썼다고 기록한 바 있다. 네로 왕은 에메랄드로 만든 안경을 쓰고 격투기를 관람했다고 한다. 안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빛의 굴절 현상을 알고 있어야 했다. 빛의 굴절 현상을 발견한 사람은 11세기 아랍의 의사 이븐 알 하이탐(Ibn Al-Haytham)이었다. 그는 유리구슬을 통해 사물을 보면 본래보다 더 커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260년 마르코 폴로(Marco Polo)는 중국을 여행하던 중에 한 노인이 안경을 쓰고 작은 글씨를 보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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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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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인류 역사에서 늘 차별받는 존재였다. 지금도 이러한 경향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의 난소는 1672년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그라프(Reinier de Graaf, 1641~1673)가 처음 발견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300년 알렉산드리아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헤로필로스(Herophilos, BC 340~250)가 시체를 해부하면서 여성의 생식선을 발견해 ‘여성 고환’이란 명칭을 붙인바 있다. 그리스 고대 문헌에는 이집트인들이 피임을 목적으로 난소를 절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르네상스시대에 베살리우스가 컬러 삽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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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2019.02.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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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해부학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한 해부학의 시조는 바로 벨기에 출신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Vesalius, 1514~1563)이다. 그는 브뤼셀에서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라인 강변의 베젤 지방 출신이었으므로 아들의 이름을 베살리우스라고 지었다. 그는 루뱅, 몽펠리에, 파리 등지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그러나 파리에서 의학을 배울 때 해부학 강의 방식에 큰 불만을 품게 되었다. 당시 파리 대학에서 해부학을 강의하던 안데르나치(Andernach) 교수는 갈레노스의 추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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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2019.01.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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