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입임대정책은 '공공임대'라는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주거약자들을 위한 주거안전망 역할을 하고, 실제로 상당히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권카르텔이 그렇듯이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약 한달 전 검찰은 '디스커버리펀드 비리' 사건 수사 결과를 밝히고, 관계자들을 기소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디스커버리펀드 자금이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김헌동)의 매입임대사업에 투자된 정황이 드러났다. 

매입임대 정책은 숨겨진 '판도라의 상자'다. 그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뉴스로드>는 이를 둘러싼 이권카르텔의 정체를 밝힌다...<<편집자 주>>

새해 들어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신축약정 매입을 늘리고, 감정가격도 올리고 규제도 풀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진현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지난 12일 서울시 종로구 청년 특화형 신축매입임대 약정사업 건설현장을 방문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이한준)와 사업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약정 방식의 신축매입임대 사업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진현환 차관은 이어 "매입단가를 현실화하고, 매입물량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각종 인센티브도 확대하는 등 관련 규제를 적극 개선해 민간 참여를 활성화하겠다"고도 강조했다. 

진 차관은 국토교통부에서 주택정책과장, 도시정책과장, 주거복지정책관, 대변인, 주택토지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관료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7년에는 공공주택추진단 단장, 2018년에는 주거복지정책관을 맡은 바 있다. 

공공주택 연도별, 유형별 공급 추이. 2022년 매입임대가 전세임대를 추월했다. [자료=국토부, 정리=뉴스로드]
공공주택 연도별, 유형별 공급 추이. 2022년 매입임대가 전세임대를 추월했다. [자료=국토부, 정리=뉴스로드]

지난 2021년 9월8일자 국토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매입임대주택 공급은 2012년 이전에는 연간 5000호 정도에 불과했고, 2017년 이전에는 연간 1만호를 넘지 않았다. 2018년 이후에는 매입임대주택 공급이 급증해 2022년에는 전세임대 물량을 추월했다. 

매입임대주택 공급의 대부분은 LH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맡았고, SH는 거의 모든 매입임대가 신축약정 방식으로 이뤄졌다. SH 홈페이지에 매입임대에 관한 설명도 신축약정방식에 관한 내용이다.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피해 대책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SH는 2021년 11월 김헌동 현 사장이 취임한 이후 신축약정방식의 매입임대사업에 제동을 걸었고, LH는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이 작년 1월말께 서울 강북구 수유 칸타빌 수유팰리스 매입에 대해 "내돈이라면 그 가격에 사지 않겠다"고 말한 이후 매입임대 실적이 뚝 끊겼다. 

최근의 집값 하락이 실제로 매입임대 수량 감소와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연간 4만채에서 5만채에 달하는 다가구, 빌라, 연립주택을 3억원에서 5억원씩 혈세로 매입해준다면 집값을 올릴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문재인정부는 집권 초기 임대사업자에게 큰 폭의 세금감면과 80%까지 대출해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이로 인해 다주택소유자들이 임대사업자로 대거 변신하면서 이른 바 갭투자를 위한 강좌와 포털사이트의 부동산카페까지 활성화됐다. 

이른 바 영끌이 시작됐고, 집값이 폭등했으며 결국 전세사기 피해, PF대출 부실 등의 문제를 낳게 됐다. 

작년 주택거래량은 모든 형태의 주택을 합쳐 약 60만채였다. 이 중 수도권의 빌라, 연립, 다가구 주택 5만채는 정말 많은 수량이다.

특히, 이렇게 사들인 주택은 다시 매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민간이 매매하는 물량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경실련 "토건업자에 혈세 퍼주는 매입임대 가격 기준 완화 철회하라...매입임대 가격 SH아파트의 2배"

진 차관의 발언에 대해 시민단체도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5일 '토건업자에게 혈세 퍼주기 위한 매입임대 가격 기준완화 즉각 철회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원희룡 장관이 지적했던 수유팰리스 아파트 매입가격(약 80억원)과 SH 공공아파트의 건설원가(평균 약 40억원)를 비교했더니 무려 2배 가량 차이가 났다고 밝혔다. 

[자료=경실련]
[자료=경실련]

진 차관의 이날 발언 이전에 정부는 지난 10일 '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신축약정 매입임대 주택에 대한 매입단가를 현실화하며, 작년 (매입)물량 8000호를 올해에는 3만호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지난 14일에는 국토부와 LH가 매입임대주택 가격 기준을 원가 이하에서 ‘감정가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실련은 이에 대해 "현재 다세대주택의 실거래가격은 무분별한 전세자금 대출과 전세보증, 민간임대사업자 혜택으로 인해 심각한 거품이 끼어 있는 상태"라면서 "정부가 매입임대 가격기준 완화에 나선 것은 오직 토건업자들을 위해 국민의 혈세를 마구 퍼주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LH와 SH 등은 집값 상승기에도 시세대로 주택을 매입해 혈세를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이어 "신축약정매입주택은 민간업자들이 기존주택을 사들인 후 그 자리에 다세대 주택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기존주택에 살던 세입자들은 거리로 내쫓기게 된다. 또한 신축주택을 짓는 과정에서 민간업자의 토지매입비용 및 건축비 거품 등이 모두 매입가격에 반영되어 예산낭비는 더욱 커지고 주변 집값까지 올라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윤석열정부는 지난 1월 10일 토건 정부 선언에 이어 토건정책을 강화하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결코 민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 토건업자와 부동산 부자를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질타했다. 

경실련은 "매입가격 거품이 빠지고 시장상황에 따라 조정된 시장가격이 반영될 수 있도록 매입절차와 감정평가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경실련의 이같은 주장은 디스커버리 펀드를 수사하는 검찰이 밝힌 바와 일맥상통한다. 

이권카르텔을 깨부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 실제 관료들의 정책이 갈수록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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