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상운임 2배 넘게 폭등 ... "후티반군과의 싸움 장기화될 수도"
- 국제해운동맹 재편 과정..."취약한 지배구조로는 협상력 없어"
- 대안 없는 HMM 파업...산업은행이 책임지나
- 정부, HMM 매각 원점에서 재고하고 '영구채 전환' 위한 매각 말아야

전정근 위원장이 주제발표를 하는 모습 [사진=HMM해원노조]
전정근 HMM해원노조위원장이 발표하는 모습 [사진=HMM해원노조]

정부는 국적해운사인 HMM(옛. 현대상선, 대표이사 김경배) 매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 한국산업은행(회장 강석훈)과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김양수)가 보유한 지분 약 58%를 하림그룹(팬오션·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협상을 벌였으나, 22일 1차 협상이 결렬됐고 2주간 추가협상을 벌여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애초 매각을 시작했을 때와는 세가지 이유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해상운임 2배 넘게 폭등 ... "후티반군과의 싸움 장기화될 수도"

무엇보다도 해상운임이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올해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제컨테이너운임의 대표적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해상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9월 29일 기준 886.85를 기록했으나, 지난주에는 2239.61까지 올랐다. 불과 수개월만에 2.5배 이상 올랐다. 

이는 홍해를 지나는 선박에 대한 후티(HOUTHI)의 공격 때문에 국제 해운사들이 장거리 노선인 희망봉 우회노선으로 전환했기 때문인데, 최근 미국과 영국의 합동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의 잇따른 보도가 이어지면서 해상운임 상승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HMM의 올해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23일 보고서에서 “중동 분쟁에 따른 수에즈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감안해 HMM의 2024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1500억원에서 2.8조원으로 크게 상향해 목표주가를 상향한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하림측이 제시한 6조4000억원은 주가가 1만6000원이었던 시점에서 제시된 가격인데다, 경영권 프리미엄도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어서 HMM 노조측이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해운동맹 재편 과정..."취약한 지배구조로는 협상력 없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해상운임 상승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는 미국 정부가 연방해사위원회(FMC)를 통해 해운동맹을 일종의 카르텔로 지목하면서 거대 동맹인 2M이 해체되고, 새로운 합종연횡이 진행되고 있다. 

HMM(대표이사 김경배)이 속한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에서 가장 비중이 컸던 세계 5위 해운사 독일 하파크로이트가 최근 세계 2위 머스크와 손잡고 새로운 제미니(Gemini)동맹을 결성을 발표하면서 디얼라이언스의 시장점유율이 뚝 떨어지게 됐다. 

해운업계는 이같은 동맹협상은 보통 1년 이상 진행되는 점을 들어 지난해 1월 최대 해운동맹이었던 2M(MSC, 머스크)이 '내년 1월 동맹을 해체할 것'이라고 밝힌 시점이나 혹은 그 이전부터 접촉이 시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기호 전국사무금융노조 HMM지부장 [사진=뉴스로드]
이기호 HMM육상노조위원장 [사진=뉴스로드]

HMM에서 27년을 근무했던 이기호 HMM육상노조 위원장은 <뉴스로드>와의 통화에서 "해운동맹에는 상호 신뢰와 경영이념, 가치관이 같아야 하는데, 복합물류와 해운탈탄소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과거 2M보다는 시장점유율이 낮아 미국 정부의 (카르텔) 감시를 벗어날 수 있다"며 이같이 짚었다. 

이기호 위원장은 이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은 자본금이 부족해 사실상 빚으로 인수를 하는 상황이어서 해운동맹 협상에서 우선권을 빼앗기고 질질 끌려다닐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구교훈(물류학 박사)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도 "국제해운동맹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이대로 HMM 매각이 진행된다면 한국해운산업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 "언제든지 한국해운이 취약한 면을 드러내면 글로벌 선사들은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고, 해운시황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해운사일수록 그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교훈 회장은 이어 "특히 유럽 선사들은 한국을 더욱 견제하기 때문에 지난번 하파크로이트의 예비입찰 탈락과 관련해서 한국 해운사의 기업가치와 성장가능성을 떨어뜨려 고립시키려는 의도도 내포됐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 해운시장은 최상위 11개 업체가 과점하고 있다. 해운분석기관 퀴네앤드나겔 등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해에만 국제해운업계는 약 180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이 중 약 85% 이상을 상위 11개 해운사가 독식한 것으로 분석됐다. 

23일 기준 해운 분석기관 알파라이너탑100에 따르면, 상위 5개업체(MSC, 머스크,  CMA CGM, COSCO, 하파크로이트)가 전세계 선복량의 64.8%, 상위 11개 업체가 86.1%를 차지한다. 선복량과 이익이 거의 일치하는 셈이다. 

3개의 해운동맹에 속한 해운사들은 모두 팬데믹 기간 동안 막대한 자본금을 축적했다. 이를 이용해 항공사와 철도, 물류창고, 육상운송업체 등을 인수하면서 복합물류 체계를 완성해가는 한편, 친환경·탈탄소로의 전환에도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친환경 규제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탄소배출이 많은 노후선박들은 강제퇴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있는 해운동맹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운동맹의 파트너가 되려면 해운사의 신뢰도가 가장 중요한데, 신규 투자여력이 부족하고 지배구조가 취약하면 협상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는 것이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해운 탈탄소화와 복합물류를 통한 차세대 물류 경쟁력 확보가 관건인 상황에서 자본력이 부족한 파트너는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기호 위원장등에 따르면, 현재 HMM은 매력적인 동맹 파트너로 여겨진다. 자선비율이 높고, 스크러버(탈황설비)를 장착한 LNG레디(액화천연가스로의 전환에 대비한) 선박 비중도 높다. 머스크 다음으로 빨리 메탄올 연료 추진 선박도 발주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3분기 해상운임이 급락하면서 대형선사들이 줄줄이 적자전환을 했을 때도 거의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할만큼 원가 경쟁력을 갖췄다. 

최근 여러차례 이어진 HMM 매각 관련 토론회에서도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하림 측에 매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모아왔다. 

디얼라이언스 시장 점유율은 현재의 18.4%에서 제미니동맹이 시작되는 내년 2월부텆는 11%대로 떨어진다. 오션얼라이언TM 29%, 제미니동맹 21.5%, MSC 20%에 비하면 절반 이하다. 

하림이 주인이 되면 해운동맹 협상력을 약화시킨다는 해운업계 관계자 대다수의 시각이다. 

HMM 노조원들이 시위하는 모습 [사진=뉴스로드]
HMM 노조원들이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하는 모습 [사진=뉴스로드]

대안 없는 HMM 파업...산업은행이 책임지나

또 하나의 이유는 파업이다. 

HMM 노조는 창사 이래 단 한차례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선원은 대체 인력이 없는데, 수출의 해운의존도가 높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노조측의 설명이다. 

이기호 위원장은 "우리나라 수출의 99.7%를 해운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운 파업의 영향력의 범위와 파급효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선원은 대체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하림측으로 매각된다면 '파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위원장은 "해운탈탄소화와 복합물류로의 전환기에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국제해운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HMM의 유보금을 경쟁력 강화에 써야 하는데, 사실상 무자본 인수에 가까운 하림측으로의 매각은 한국해운의 미래를 망치는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어 "HMM은 해운동맹의 화물을 같이 운반하기 때문에 파업이 쉽지 않다. 만일 파업하게 되면 HMM은 물론 한국해운과 한국기업에 대한 신뢰를 해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 매각으로 노조를 파업으로 내몰고, 국내 수출기업들이 타격을 입게 되면 이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 HMM 매각 원점에서 재고하고 '영구채 전환' 위한 매각 말아야

정부는 하림과의 협상을 유찰시키고 원점에서 이번 매각을 재고해야 한다. 

이번 매각은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영구채(CB·BW) 매각에 초점을 맞추면서 HMM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외면한 데서 비롯된 문제다. 

결과적으로, 58%의 지분을 인수하더라도 산은과 해진공이 32%의 추가 지분을 확보하는 순간 보유지분이 40%도 안되는 매각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는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을 뿐 아니라, 산은과 해양수산부 스스로도 우려를 밝혔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월 보유 영구채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강석훈 회장이 "HMM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여럿 있다"고 했던 바로 그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게 됐다. 

지금은 해상운임이 올라 굳이 매각을 서두르지 않더라도, 영구채를 조기상환 받아 공적자금도 회수하고, 주가 희석을 피함에 따라 BIS 비율 맞추기도 어렵지 않게 됐다. 

OECD내 제조업 강국 중에 국제공급망의 핵심인프라인 해운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나라는 없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